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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엄마와 나의 아저씨

어느날 들려왔다 설마 왜 내 두 아이의 분개 성토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연일 나오는 뉴스를 읽고 들으면서 좀 겸손할 것을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이 왜 좀 더 처신을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을 무렵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설마 하며 뉴스를 찾아 읽었다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나 세월 흐르다 보니 이만큼의 나이가 되어 보니 어찌 한평생 일관성 있게 한 길만을 걸으며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싶다 알게 모르게 마음속 사연 하나 다른 이 하나 품었다 내어놓았다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표나지 않게 속앓이로 시작되어 소용돌이처럼 들끓다 끝나는 줄 모르게 지쳐가다 희미하게 사라져들 가는데 어느날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 뒤를 ..

관객 2024.03.17

겨.울.숲.으.로.가.다 / NR

" 잘 보그라잉. 요 소나무 밑엔 잡목이 읍지야? 소나무란 거시 승질이 쎄가꼬 딴 잡목들이 지 터에 자리잡는 걸 징상스럽게 싫어해븐다. 긍게로 소나무 숲엔 엥간해선 잡목을 볼 수가 읍는겨. 글믄 사람 댕기기는 어찌긋냐? 편컷지야? 그랑게 산에서 길을 잃음 당황허들 말고 일단 소나무 숲으루 들가란 말여. 그라믄 틀림없이 사람 댕긴 흔적이 있는 벱이여. 근디도 사람 흔적이 읍다 허믄 우찌게 해야 쓰냐? 잘 보그라잉.. 요,요 ,소나무 둥치를 자세히 보믄 볕이 든 쪽은 암시랑토 안허지디 볕이 안든 쪽은 습허고 눅눅헝게 퍼런 이끼가 끼는 벱이여. 해가 동쪽서 떠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지지야? 글믄 이끼가 낀 쪽이 남쪽이것냐? 북쪽이것냐?" " 북쪽!" " 그라제~! 그라믄 사람은 어찌냐? 따땃헌 데서 살지야? ..

흔적 2023.11.17

섬 / L J S

내 친애하는 벗이여! 오늘은 쓸쓸함이나 외로움과는 그 색깔이며 의미가 다른 존재론적인 고독에 대하여 말해볼까 합니다. 벗은 그렇지 않나요? 낯익은 거리든, 낯선 거리든, 사람들이 복작대는 거리든, 한적한 거리든 상관없이 혼자 거리를 걷는 어느 순간에 고독감을 느끼게 되지 않나요? 또한 그 고독감은 내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서 탐구하게 하는데 언제인가는 의문을 가져봤지요. 혼자 걷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니더군요. 혼자는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이며 다른 무엇으로 잠시라도 위무될 수 있는 정서이기 때문에 가령,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맛난 음식을 포만감이 들도록 먹는다거나, 코미디나 떠들썩한 오락 프로그램, 혹은 영화를 본다거나, 아니면 술이나 쇼핑 또는 다른 사람..

흔적 2023.10.17

가을 편지 / 이해인

당신이 내게 주신 가을 노트의 흰 페이지 마다 나는 서투른 글씨의 노래들을 채워 넣습니다 글씨는 어느새 들꽃 으로 피어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은 없어지고 눈빛만 노을로 타는 우리들의 가을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당신의 눈빛과 마주칩니다 가을마다 당신은 저녁노을로 오십니다 말은 없어지고 목소리만 살아남는 우리들의 가을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목소리에 목숨을 걸고 사는 나의 푸른 목소리로 나는 오늘도 당신을 부릅니다 2 가을의 그윽한 이마 위에 입맞춤하는 햇살 햇살을 받아 익은 연한 햇과일처럼 당신의 나무에서 내가 열리는 날을 잠시 헤아려 보는 가을 아침입니다 가을처럼 서늘한 당신의 모습이 가을 산천에 어립니다 나도 당신을 닮아 서늘한 눈빛으로 살고 싶습니다 싱싱한 마음으로 ..

문학 2023.09.17

우리들의 이별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2018년 강창래 작가의 동명 에세이를 옮긴 작품 제주도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떨어졌다 양쪽 옆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섬처럼 앉아 섬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너무 외로웠나 보다 아직도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더 필요하다 아침 7시쯤에 잠이 깼다 올빼미처럼 살았던 평생의 기억은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 버렸을까 늦게 잠든 날에도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면 어처구니가 없다 아내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 회사를 책임지고 일이 우선일 때는 시간은 내기 어려웠지만 암을 선고받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가 걸을 때마다 기꺼이 함께 걸었고 그녀는 함께 걸었던 일 년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날 그 산들의 계단을 생각..

관객 2023.08.17

티모시 샬라메와 무디블루스

Call Me by Your Name 2017 (tistory.com) 야구 막간에 투수가 바뀌거나 회차가 바뀔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광고를 하는 시간이면 후다닥 간식거리를 가져오거나 할 일을 하거나 하는데 갑자기 어디 에선가 Nights in White Satin이 무디블루스 음악이 나왔다 아니 어디서 이 음악이 아니 아니 고개를 돌리는데 그윽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듯한 살로메다 어느 날 이 젊은이의 영화에 매료되어 영화 거의를 찾아보면서 미처 찾지 못한 한글자막을 찾고 찾아 영화를 보던 날이 있었는데 아.. ㅎㅎ 이 분위기를 어찌 설명해야 될까 내 타입이다 퍼뜩 스쳐가는 에덴의 동쪽 제임스딘을 연상케 했으나 살로메만이 가질 수 있는 내가 느껴가는 암울하고 뇌쇄적인 왠지 순한 듯 순진한 듯 은근한 섹..

선율 2023.07.17

꽃자리마다 그늘이 머물고 / 장용림

진달래 피다, 사랑이다 진달래, 바람에게 숨, 응시하다 복사꽃, 바람이 불면 저만치 홍매화가 피고 홍매, 숨을 쉬다 홍매, 숨을 쉬다 숨, 꽃을 스치다 숨, 응시하다 매화, 숨을 쉬다 매화, 바람이 불었던가 삼월, 춘설이 들이치다 배꽃피어 사월을 전하고 배꽃 배꽃 2 숨, 오동꽃을 스치다 칠팔월의 무더위도 맨 얼굴로 견디던 오동잎이 구월로 달이 바뀌자 툭 하고 그림자처럼 떨어진다 두 손바닥을 펼친 것보다도 넓은 잎이 뒤척이며 땅바닥을 긁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숨이 훅 다가온다 곧게 서 있는 오동나무를 올려다보니 잎 하나 비워낸 것뿐이라는 듯 무심하다 하늘을 어둡게 가리던 짙푸른 잎들이 순간 사라지고 환영처럼 오동꽃이 오동색으로 환하게 피어난다 오동꽃, 바람이 지나고 오동꽃이 피였다는 소식 오동색…...

예능 2023.05.17

천의 아리랑 / 김승희

1. 가슴속의 피아노 누구나 한 번은 떨어지고 싶어 한강으로 간다 가슴에 검은 피아노 한 대를 질질 끌고 한강 다리를 취중 횡단 야 이 미친년(놈)아 너 죽고 싶어 흠뻑 쌍욕을 먹어본 적이 있다 죽고 싶으면 저나 혼자, 환장 뒤통수에 따라오는 빛나는 쌍욕의 훈장을 끌고 강가에 서면 그런 떨어지는 것들이 모두 모여 강물이 숨을 쉰다 이렇게 많은 피아노들이 한강에 떨어졌는가 달을 주렁주렁 매달고 미친 피아노들이 숨을 쉰다 강물은 숨결 숨결은 이야기 누군가의 숨결 산맥의 이야기 오늘 밤에도 누군가 한강 물 속에서 녹슬고 부서진 벅찬 피아노의 탄식을 듣는다 사랑이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가슴 안에 있는 아리랑이 너의 가슴 안에 있는 아리랑을 알아보는 것이다 1890년대 후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네..

문학 2023.04.17

그림자

+ 그림자 허공에 한껏 부풀려진 제 영혼을 위하여 그림자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드러눕습니다 모양과 부피가 각기 달라도 영혼의 두께는 다 같은 법이라고 모든 존재의 뒷모습을 납작하게 펼쳐놓습니다 높이만을 최고로 알고 중력과 싸우느라 버둥거릴 때도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와 높을수록 커지는 위험을 길이로 재어줍니다 알록달록한 꿈 자랑하며 휘날릴 때 화려한 빛깔들을 가장 단순한 색으로 바꿔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품는 쉼터가 되어 줍니다 감당 못할 무슨 일로 풀죽은 저녁 무렵이면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며 지평선 끝까지 키를 늘이고 어깨 다독입니다 해를 쳐다보는 동안에는 못 보지만 방향을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가까운 곳에서 해로 하여 가려진 세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평생 곁에 머물러 날 지켜주다가 ..

문학 2023.03.17

그리운 사람 너무 그리워서..

결혼 한 달쯤 지나 친정에 다니러 온 나에게 잘 가라는 말을 남겨두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부음을 한 시간 만에 낯선 이에게 받았다 그때의 그 참담함이란 49재 내내 꿈을 꾸어가며 엄마 같았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말 한마디 못하고 무심히 보내어야 했든 기막혔던 현실에 헤매었던 날이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가 아니었는데 그나마 엄마가 좀은 색깔이 달리 보이던 남편에 첫 시집살이의 긴장감에 지금과 같은 힘든 상실감은 없었던 듯했다 아님 큰 슬픔이 또 다른 큰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깨닫지 못한 사이 이별에도 세월 속에서 제각기의 기억으로 희석되어 해석되는 건지 아버지의 초상에 어떤 여자가 문상을 왔다 내가 기억하는 그 여자는 엄마랑 많이 다르게 생긴 거로 기억된다 유달리 얼굴이 작고 하얀 내 엄마와는 달리 ..

산책 2023.01.29

색 바랜 갈피마다

다른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뒤 어딘가에 올렸던 거 같은데 어쩌다 다시 듣게 된 이 노래가 뜨끔거린다 한마디도 할 수가 없는데 가슴속에 뭔가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거 같으니 . . . 이 여자의 눈매는 참 깊다 눈으로 말하고 표현하고 있는 거 같으니 언젠가 학교 선배가 네가 돋보이는 거는 네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는 그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거 보면 늦가을에 만난 사랑이 찰나처럼 꿈속으로 사라져간 사랑이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같았으니 (요즈음은 극에 이입되는 거 같다 막다른 삶같이 느껴지던 두 사람의 사랑이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서 남자가 그리 사라져 갈 때 나 또한 허전함이 밀려왔으니..) 왜 이렇게 숨차게 말이 많을까 하며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근데 대사 하나하나가 콕콕 박혀 ..

관객 202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