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그리운 사람 너무 그리워서..

하농17 2023. 1. 29. 10:37

 

결혼 한 달쯤 지나 친정에 다니러 온 나에게

잘 가라는 말을 남겨두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부음을 한 시간 만에 낯선 이에게 받았다

그때의 그 참담함이란

49재 내내 꿈을 꾸어가며 엄마 같았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말 한마디 못하고 무심히 보내어야 했든 기막혔던 현실에

헤매었던 날이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가 아니었는데

 

그나마 엄마가

좀은 색깔이 달리 보이던 남편에

첫 시집살이의 긴장감에 지금과 같은 힘든 상실감은 없었던 듯했다

아님 큰 슬픔이 또 다른 큰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깨닫지 못한 사이 이별에도 세월 속에서

제각기의 기억으로 희석되어 해석되는 건지

 

 

 

 

아버지의 초상에 어떤 여자가 문상을 왔다

내가 기억하는 그 여자는 엄마랑 많이 다르게 생긴 거로 기억된다

유달리 얼굴이 작고 하얀 내 엄마와는 달리

얼굴이 손발이 크고 뚱뚱했으며 말을 잘 붙였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도 상관없다는 듯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며 온 거 보면 사교적이라고 해야 하나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엄마는 어디에서고 미인이랑 소리와 이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가 바로 밑 부하인 외삼촌 집에 놀러 가서 엄마를 보면서

아버지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오빠 네명에 나를 낳으면서 일하는 아줌마는 살림을

아버지는 엄마랑 같은 이부자리에 자면서 몸조리를 다 해줬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몸이 많이 약했으며 갈수록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아져  

마지막에 가서야 신장 하나를 덜어내고 지금까지 잘 살아내고 있었다

사람은 갖출 거는 다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엄마는 폐렴 합병증으로 떠나셨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이겨내는걸

엄마는 몸이 약해서 신장이 하나여서 약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떠나가셨다..)

 

그런 아버지가 사회에 나오면서 몇 명의 여자가 있었던 거로 기억된다

특히나 아버지는 여자가 좀 많이 따르는 타입이었던 거 같다

오빠들도 그랬던 거 같았으니

 

아버지가 60대 중반을 막 넘긴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엄마 나이도 지금 나이로 보면 얼마나 청춘이셨을까 짐작이 된다

 

 

 

 

엄마가 아버지를 보내면서 내게 그랬던 거 같다

아버지가 그런 여자라도 있어 재미있게 살다 간 거 같아 오히려 위로가 된다고

그 여자가 밉지는 않다고

근데 지금 돌이켜 더듬어 보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다

어쩌면 마음 한켠 돌아서게 하던 일들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위로되고 무마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가 가장 많이 사랑한 딸이 낳은

딸의 백일에 옷을 사다 준 낯선 여자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는 걸 보니

 

키가 크고 치아가 건강하셔서 50대인 줄 알았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제일 먼저 본 경찰관의 말을 들으며

커다란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와 다 찌그러진 아버지 차는 각인되듯 선명한데

그 여자의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지금의 마음이 그때였더라면

나는 또 다른 사랑과 관심으로 엄마를 감싸 안지 않았을까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세월 흘러가니 서서히 알게 되는 게 있더라

아니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니

내 분신과도 같은 내 딸의 모습에서 나를 보듯 선명하게 깨달아지는 게 있더라

엄마의 자리가 그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자식이란 엄마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표현하기조차 부족했던 그 큰마음들이 이제야 알게 되더라

 

엄마는 당연히 내 옆에서 붙박이장처럼 살아주는 줄 알았고

딸이 어떤 말과 투정을 해도 다 이해되는 줄 알았다

엄마도 여자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뱀의 혀처럼 시어머니에게 예의 갖추어 대하듯 내 엄마한테도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 이런 후회의 탄식이 나오지는 않았을까

 

엄마의 사랑을 항상 염려로 가득했던 그 마음들을 왜 나는 당연한 듯 했을까

괜찮다고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왜 하지 못했을까

끝까지 내가 걱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가게 했을까

그런대로 그럭저럭 나는 괜찮았는데도 말이다

 

 

 

 

어쩌다 발견한 선물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분수처럼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다음날 혼자 있을 때 내려서 봤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딸이 된 시어머니가 엄마가 되어있는 며느리에게 하는 말에도 서러움이 넘나들었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당부의 말도

보이지 않던 아들을 향한 큰 사랑에도 콧등이 시큰해져 왔다

 

먼 세월지나 한세월 가면

어느덧 문득 나도 저 나이가 되어 있을 텐데

대사 하나하나가 저며 들도록 스미어왔다

 

음악의 가사들이 내 이야기 같아서가 아니다

흘러간 팝송들의 음이 애잔해서도 아니다

애환이 서린듯한 연주곡들의 음에 슬픔이 묻어 나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상스레 폐부 깊숙이 새겨 들었다

내 지나간 날들의 세월이 시간이 보상처럼 꿈결처럼 구름 흘러가듯

울렁거려와 울컥거려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빨리 가셔서

하얀 할머니가 되어있는 나 몰라보면 어떻게 하냐고

다른 사람 만나 잘살고 있는 꿈까지 꾸었다며 걱정 아닌 걱정에

엄마도 다른 사람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라고 단순히 대답했었는데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었는가 보다

 

아버지는 만났나 엄마

(이제 여기서 나랑 같이 있자 어디 가지 말고..)

아버지도 이리 말하고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온 엄마 반갑게 맞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 또한 조금은 마음의 위로가 생기는 거 같았다

 

아버지랑 재미있게 살고 있으라

나중에 내가 찾아갈 게

엄마 그때는 정말 잘할 게

(엄마 나는 엄마한테 못한 거만 기억이 난다..)

엄마 미안해

엄마 많이 사랑해 많이 많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