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 애기를 물어보면 왜 화가 많이 날까
근데 너도 그러냐 나도 그래 진짜 신기하지
아 이상하게 엄마기 일 애기를 물어보면
대답도 하기 싫고 짜증도 나고 전화 끊기 바뻐
근데 전화를 끊잖아
죄책감과 후회가 막 밀려와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잖아
또 일 애기를 하거든 그러면 또 화가
(슬기로운 의사생활2)
대사 하나 하나가 페부를 찔러온다
나도 그랬는데
나도 그랬는데
.
.
.
세상의 딸들이란 엄마한테는 으레 그래도 된다는 듯
엄마한테는 무어라고 해도 괜찮다는 듯
영원한 내 편이라는 믿음 아래
나중 응어리 하나 해결되지 못할
풀리지 못할 매듭 하나 가슴에서 품고 살 줄 모르고
딸들은 살아가나 보다
아무리 잘해도 후회의 한숨은 깊은 법
나중 그 어디에서고 엄마가 보여 오지 않을 때
아무리 불러도 엄마가 대답해 오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후회라는 멍울의 죄책감에 시달려 간다는 것을
드라마를 보면서 소리 내 엉엉 울었다
우리 엄마 너무 그리워져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각색한 건가 하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
그냥 흘러들어서 이해되어갈 단어들은 아닌 듯
독백하듯 내뱉는 대사를 음미하듯 되씹어 본다
죽기는 왜 죽습니까
안 받으면 되는데 하며 서로의 눈빛 교환으로
감정이입이 클로즈업되면서 이 노래가 나오는데
ㅋㅎ 목소리 가사 너무 가을스러워서
.
.
.
처음부터 없든 그랬든 것처럼 사라지고 없는 꿈같은 이야기
비 내리던 그 날 기댈 곳 없던 나
누군가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혼잣말을 하며 거리를 걸으면
내 그림자 되어 사라지는 기억들
그 기억을 찾아 걷고 걷다 보면 차가운 이곳에 홀로 남겨진 나
누구를 만나고 이별을 말하고 가슴 속 허무한 현실의 이야기
혼잣말을 하며 거리를 걸으면 꿈처럼 펼쳐질
내 삶의 길 위에서 사랑과 이별이 구분되지 않는
내 앞에 놓여진 길고 긴 시간들 처음부터 없든 그랬든 것처럼
사라지고 없는 내 작은 이야기 내 작은 이야기 남겨진 혼잣말
아침 햇살이 여린 나뭇잎과 어우러져 흑백의 조화처럼
화선지에 붓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듯한 이런 문양을 만들어 낸 적이 없었는데
언제부터 산들거리는 무늬를 띄워 가며 햇살이 거실 안까지 들어왔을까
이상한 영험한 기운을 느껴 가며 광채처럼 비쳐오는 밝은 빛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몇 분이 지났나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온다고 예약을 한다
참 특이하게도 오후 공원을 산책하고 있으면 집을 보러 온단다
걸음 빨리하며 집으로 향하면 몇 분보다 나가고 해서
요사이는 공원에 있다고 다음에 오시라고 하는데
또 오기 그렇지 않겠냐고 반문해 오길래
인연 닿으면 또 걸음 하는 날 있지 않겠냐며 그리 급급해하지 않으니
오늘은 아침 일찍 예약해 온다
정리는 잠깐이면 끝이 난다
(나는 정리정돈의 달인이요
줄 세워 각 세워서 제 자리에 있어야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라..)
언제 비워줄 수 있느냐 해서 집 구하는 대로 나가지 않겠냐는데
집을 나서자마자 전화가 와서 깎아달라고 한다
다른 집보다 싸게 내놓은 상태라 부동산에서 집값이 오른다고 다시 가격을 확인해 올 때
그냥 그대도 하되 더 깎지는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기분이라 깎아야 된단다
계약금이라는 돈이 몇 분 만에 내 통장에 꽂혀 오고
약속이 취소되면 어떤 손해가 생기느니 하는 문자가 온다
다음날 네이버 부동산을 뒤지는데
맙소사 내 전에 우리 아파트를 판 사람이 삼천육백이나 더 받았다
안 팔면 안 되느냐는 영혼 없는 물음 한번 던져 가며
나는 다음날 첫 번째 처음으로 본 집을 남편과 함께 한 번 더 보고서는 계약을 했다
아파트는 건축설계 일을 하는 사람의 집으로 올리모델링과 확장공사가 되어 있었으며
고층으로 연 그레이 연 베이지 화이트 톤의 집 분위기와
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앞뒤 풍경에 압도되어 왔다
집이 몇 채가 되는 이 사람은
5월 중순에 바뀌는 세금 관련 문제로 집을 급히 팔아야 하는 거 같았다
몇천을 싸게 집을 팔고
몇 개월 만에 1억이 올라 있는 아니 며칠 사이에도 몇천 단위가 오르락만 하는
21층 아파트를 최고점을 찍으며 집을 샀다
집값이 마구잡이로 오르면서
이곳은 묶였던 투기지역에서 풀리더니 다시 묶이고 오른 상태 그대로 멈추어 있다
그 이후 노트북을 찾을 때면 즐겨찾기를 해 놓은 네이버 부동산을 습관적으로 뒤지고 있다
더 오르지는 않더라도 더 내려가지는 않았으면 하고
왜냐 이쁜 옷을 아주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샀는데
그다음 날 세일로 들어가면 그 기분 그렇지 않을까
아는 어르신이 그러더라
원래 싸게 팔고 비싸게 사는 게 정석이요 세상 이치란다
ㅎㅎ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 잘 믿는 그 어르신과 내가 모자란 거지
다운받아서 드라마를 보다
가을이면 어디에서고 흘러 나왔을 이 노래가 나오는데
드라마가 가져다주는 여운 또한 무시 못 하겠지만
스멀스멀 가슴 저 밑바닥에서 탄산수 기포 방울방울 맺혀오듯
싸한 게 그 무엇이 감지되어 왔다
그래 세월이다
음악에서 이 사람의 목소리에서
내 지나온 날들의 상흔들이 스며들어 왔다
가을이다
네 탓이라 하자
소리 없이 내 마음부터 건드리기 시작한
가을이 저만치 나를 보고 손짓하고 있었다
또 가을이 찾아 들어왔다
엄마는 누가 좋은데 응 정경호
되게 말랐는데
근데 엄마 젊을 때는 저런 타입을 좋아헸던 거 같다
(속으론 아니 지금도 그런 거 같은데
ㅎ 근데 나오는 모두가 매력이 있기는 하다.. )
나는 유연석이 좋은데 어깨가 넓어서
응 그 사람의 역할에서 오는 다정함
설렘의 극치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풋풋함의 결실 청춘으로 다시금 돌아간다면
사랑에 있어 소극적이지 않고 다 표현하며
한 사람을 향한 내 사랑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세월에서도 내 한껏 최선은 다하지 않았을까
뒤돌아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람이 내 과거의 최선 지금의 결과물은 아닐까
어느 노래 가사 말처럼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처럼
가끔 미워지는 날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최선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아닐까
(아.. 그래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른 이와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남편을 위해서라도..)
어느 날 즈음에 안개가 창가를 뒤덮어 오던 날
산등성이에 구름 걸려오며 비 뿌려 오는 날
불쑥 고개 돌리며 이유 없이 가슴 가득 습기 머금어지는 걸 보면
아마 음악이 가져다주는 내 회향
내 우울한 감성
이 또한 내게 있어 소소한 일상의 작은 행복은 아닐까
내 추억의 초상
아 가을이다
다시 가을
이게 뭐지 하며 정해인이 나온다길래 단숨에 다운받아서 다 본 영화
며칠 뒤 아들아이 엄마 DP 봤나
응
그거 굉장하지 않더나
거기에 나오던 여자애 군대 이야기는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고 하던 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봐야 할 영화인 거 같은데
알림을 많이 제시해 주는 다큐같은 영화같이 느껴지던데
근데 처음 그 병장이 정해인한테 생긴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며 괴롭힐때
하지 말라고 분명한 뜻을 밝힌 반면
마지막에 죽은 청년
때리는 게 싫어 유도 그만두었다는 너무너무 착한 그 조 일병 말이다
괴롭힘을 숙명처럼 마냥 받아들이던
엄마는 두 사람의 성격에서 오는 가치관의 차이도 보이더라
요즘은 착한 사람들은 사람에 따라 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는 거 같더라
잘못한 것도 없이 내가 건드지도 않았는데 건드려 오면 그건 죽을 각오로 싸워야지
(아.. 이 또한 당하지 않으면 모를 테지 내가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
아들 가진 부모로서 실화와 같은 영화 내용에 분노와 화가 치솟다 급기야 눈물까지..)
왜 탈영을 하는지 몰랐고
어느 강원도 산골 군대에서 탈영병이 생겼다며 뉴스로 들으며
나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처럼 방관자가 됐었는데
분단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요 숙제였었던 거 같다
아들아이가 의경을 가면서 육군은 5주를 의경은 4주를 논산에서 훈련을 받는데
그나마 5주가 아닌 4주라서 일주일을 덤으로써 작은 위로가 되는 듯했었는데
머스마 DP 이후로 수시로 군 이야기를 꺼낸다
논산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생겨나는 암울함이란다
근데 아들은 의경이라 좀은 덜 힘들지 않았나 하는데
의경중 지보다 어린애가 하도 트집을 잡길래
옥상에 불러서 뭐라고 했더니 그다음부터는 그러지 않더란다
대물림하듯 이루어지는 폭력 가혹행위 성추행 이를 다 어찌해야 하나
이상하게 머스마가 군을 갔다 왔는데도
군대 노래가 나오고 그때가 생각이 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
.
.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 데 무슨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마지막에 나오던 대사들..)
모두가 귀한 자식들 20개월을 믿고 보내는데
개혁하고 하나둘씩 새롭게 변화되어 가면 안 되는 걸까
군대가 다는 아닌데
남아있는 생이 더 많은데 남을 괴롭히고 해를 끼치면 다 본인에게 돌아오는데
그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다른 가장으로 가면을 쓰고 누구의 자식으로 아버지로 사회인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가 있나
DP를 보면서 남자들의 세계 군대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처음으로 살갗에 와 닿은 듯 이해되기 시작했다
너무 몰랐다
여기 이 땅의 남자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동안의 고통이 평생의 흔적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는데
엄마 엄마
왜
빨리 와봐 저거 봐봐
으아악
해 넘어가는 저물녘
지 방 창가에서 보는 산등성이가 온통 붉은빛이다
반사되어와 아들 방 창문까지 우리들 얼굴까지 노을빛이다
저거 엄마 풍경 좋아한다고 엄마 감성을 알고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를 부르는
마음이 너무 이쁜 우리 아들 사랑한다 많이 많이
다 버린다고 버렸는데 여기에 와서 더 많이 버린 거 같다
포장 이삿짐 아저씨들이
주섬주섬 아무 데나 집어 넣는 것을 보고서는 놓아두시라고 했더니
나중 박스는 찾아가겠노라고 하면서 거실에 박스채로 짐을 잔뜩 두고 가 버렸다
짐이 많아 좀 버려야 되겠다기에
무엇을 버려야 할지 되물으니 옷이란다 그리 많이 버렸는데
맞다
내 옷만 해도 내 몸이 대학 다닐 때와 몸무게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으니
좀 주고 산 옷들을 버릴 일이 거의 없었으며
결혼하기 전 아기 낳고 살이 찔 거라며 겨울 코트니 근사한 옷들을 66이니 77로 사들여 놓았더니
너무 크서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어쩌면 택도 그대로인 옷들이 장롱에 그대로 있었으니
이 아저씨들이 그런 말을 했을 거라며 고개 끄덕여졌다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거는 아니었지만
일 년 동안 손이 한 번도 안 가는 옷들을 내어놓았다
한 번 더 입어보고 고민 또한 생기는 옷들이 있었지만
엄마가 가고 난 뒤 내 남아있는 짐들이
나중 내 자식들에게 그 어떤 마음의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정리하면서 쌓여 있는 기억에 아파지고
엄마의 흔적 같은 짐들을 손에서 마음에서 놓지 못해
내 나중 떠나갈 때 같이 갈려고 엄마 짐을 깊이 넣어 놓았다
부엌 물건들은 얼마나 많이 버렸던지
어떤 물건들은 재활용을 도와주시는 아줌마들이 가져가셨고
가전제품을 아들이 들고 가는데 버릴 거냐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고 가시는 분 또한 계셨단다
장롱과 화장대는 신세계에 가서 내 눈을 사로잡던 걸 샀으니
세탁기는 딸아이가 골랐는데 와서 보고는 음 역시 했다는
쇼파 에어컨 지 침대는 머스마가 옷 입고 퍼뜩 나가더니
롯데에 가서 보고는 명세표까지 받아 오더니
인터넷으로 똑같은 물건을 싸게 사는 거 같았다
올 4월에 출시되었다는 스탠드 에어컨을 사니 벽걸이 에어컨이 따라서 왔고
아들 방에는 실외기를 다는 데가 없어 창문형 에어컨으로 달았다
커튼을 집 분위기 가구에 맞추어서 맞추었고
화분과 식물들을 직거래로 주문하면서 거실과 방을 장식했다
원래 식물들을 키우고는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게으른 사람들이 잘 키운다는 스튜기와 슈퍼바등 선인장과는 잘 죽었다
물 좋아하는 애들은 심할 정도로 잘 자라는데 말이다
화분과 맞추어서 스튜키 슈퍼바 호야 스킨 테이블 야자 스파티필름을 몇 세트씩 주문했더니
영양제와 흙들을 같이 보내줘서 집에 있던 식물들과 함께 분갈이를 다 했다
쇼파가 주문 제작이라면서 6주 2일 만에 최장기간 우리 집을 찾아 들었고
그렇게 오래 걸린다는 에어컨들은 4일 만에 우리 집 거실과 방들에 자리 잡았다
물건들이 하나둘씩 이사한 집에 찾아 들면서
여기저기 내 손이 필요한 곳을 쓸고 닦고 꾸미고 하면서
봄과 여름이 가면서 가을이 찾아 들고 있었다
이제 거실에 차분히 앉아 내면을 하늘거리게 하는 음악을 들으며
무언가를 끄적이며 내 아는 이들에게 안부라도 묻고 싶은 선물과 같은 계절
가을이 창밖에 와 있다
점점 더 할 말을 잃어갈 테고 그러는 내가 나를 향해 미소를 띄워가는 중이다
진한 커피의 향내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이 가을을 깊어가게 할것 이라는 것을 예견하며
그 향취에 취해 갈 것이다
가을이다
암만해도 이 커튼 집 아저씨랑 내 정서가 비슷한 거 같다
커튼의 치수를 재어야 하는 사람이 일할 생각은 안 하고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멋지다고 연신 감탄이다
남편은 공대생으로 나랑 정서는 하나도 안 맞다
아직 집 풍경이 어떻다고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어
이 아저씨랑 시선에 들어오는 풍경을 이야기한 거는 처음인 거 같다
단지 딸아이가 집을 보고서는 집이 엄마 같다고 평한 게 다였으니
커튼 때문에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가려질 수 있으니
얇은 실크 천 같은 하얀 커튼으로만 거실을 꾸미잔다
아 아니요 하얀 천을 안에 넣데 연한 그레이로 이중커튼으로 하고 싶다고 하니
이 아저씨 몇 가지 색을 제시하는데 색 선택도 나랑 비슷하다
커튼 때문에 아저씨한테 전화가 오고 자연스레 내 카톡에 사진이 뜨니
이 아저씨 진짜 많이 커튼 전문점답게 삼백몇 개의 커튼들이 올라와 있다
휴가철이라 천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며 예약 몇 시간에도 올지 말지 모른다고 하더니만
언제 그리 빨리 마무리를 했는지 한밤중에 와서는
거실 방 세 개 다 달아주고 가면서
부엌 작은 창의 커튼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며칠 뒤 낮에 와서 달아 주면서
자기가 돈을 좀 번다고 공장이 몇 개라고 시간날 때 자기 따라다니면 월급을 많이 주겠단다
저번에도 남편이 옆에 있는데 윙크를 하길래 내가 잘못 봤나 했었는데
아.. 이 기분 찜찜함을 글로서라도 털어내자
커피와 생수를 내어놓는 손을 쓰윽 으악 이 소름 돋는 기분
남편도 내 허락받고 내 몸 만지는데
(왜 이 가을 글에 이 말을 적느냐 하면
나는 글을 일기를 쓰고 나면 내 인생 한 부분이 정리되듯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리는 거다
이렇게 쓰면서 그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어서
근데 나는 아직도 내가 설레는 사람이 좋다..)
단지 고마운 거는 그 아저씨가 낮이고 밤이고
한결같이 우리 집 풍경에 할 말을 잃어가며 취해 갔다는 그거밖에는 없다
거실로 보이는 풍경은 산이다
산 너머로 보이는 다른 동네가 아파트들에
또 그 너머로 옅고 진한 몇 개의 산등성이가 보인다
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창밖으로 구름과 가까워 새들이 휙 쓰쳐지나가고
구름이 산등성이로 내려와 뿌연 솜뭉치 같은 안개를 만들고
한밤중에는 아주 멀리 별이 보일 때가 있고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새벽녘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색으로
크고 둥근 붉은 해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올 거 같이 가까이서 보여 오고
노을빛의 주황빛이 서서히 청 빛 코발트블루 다크 블루로 깔려 들면서
연한 잿빛의 하늘이 구름이 오묘하게 모습을 달리해 가면서 생겨나는
색들의 혼합이 거실 창을 물들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아 좀 더 빨리 움직였을 걸 하는 막연한 아쉬움 또한 생겨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시선들을 풍경을 보고 살았더라면
그러면 내 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저녁이면 부엌 창가 쪽으로 아이 방 쪽으로 저녁해가 넘어가는 걸 보며
노을이 저리 이쁘다며 잠시 허무에 젖기도 하는
내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도시 저 너머의 산 풍경
신년에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 되겠다며
미리 아이들한테 예약도 하면서
뿌듯해져 오는 마음속 외침을 들으면서
첫눈에 반했던 내 집이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더욱더 마음을 이끈다
안 그래도 잘 움직이지 않는 내게
내 베란다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래져 가는 산 나무들을 보면서
가을의 속도를 느껴가고
손에 들린 뜨거운 커피가 유난히 맛있어지는 이 가을날
바스락거리는 사르륵 툭 톡 가을 낙엽
이 가을의 진동
가을이 짙어갑니다
안부합니다..!
(그즈음의 어느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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