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했나
아니
그럼 왜
아침까지 문자 왔는데
남편이 나를 위해 찾아준 동창 모임에서 그 애를 보면서
그 애는 내 동창도 되면서 남편 동창도 되는 친구였다
우리는 각자의 모임에서 드문드문 스쳐 가면서도 몰랐던 관계를
나중 남편의 부부 모임에서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그 애는
글을 아주 잘 쓴다는것과
시인으로 등단해 그의 이름으로 낸 책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으며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공개 글에 근사한 댓글과 함께
산에 가는 모임을 운영한다며 한번 참석했으며 한다는 글과
그 글에 내 친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는 걸로 기억하고 있다
5년 뒤 항암치료 끝에
다 나은 줄 알고 친구들에게 한턱낸다는 그 애는
다시 재발하여 폐암 4기로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비싼 약을 처방받는다고 했으며
언젠가 산책길에서 삶을 존중할 줄 몰랐다며
술과 담배로 지새우던 날들을 내게 덤덤히 이야기해 왔다
올해 부부 여행에서 유난히 기침을 많이 하고
초췌해 보이던 내 걱정어린 시선의 화답에 옮기는 기침이 아니라며 좀 피곤하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러 간 그 애가 돌아오지 않자
화장실로 찾으러 간 그의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그날 자기의 죽음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천년 만년 살 거처럼
친구들에게 좋은 글귀와 함께 인사를 해 오던 그 애는
그렇게 허무하게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 버렸다
이렇게 약해서 어떻게 하냐며 먹을 것을 잔뜩 챙겨다 주며
상품마다 내게 던져주고 가던 남편 친구이며 내 동창
그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서늘한 잿빛 바람이 가슴속을 흟고 지나갔다
때마침 서편 하늘에서 가을이 당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죽어도 좋을 거 같던 계절에
너무 빨리 한 사람이 떠나갔다
그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내가 정몽주를 죽였고 내가 그자 대신 명의 볼모로 갔고
내가 고려 왕을 쳐내고 아바마마를 왕위에 올렸어
그자들은 정몽주를 죽이고 싶어도 명분 따위에 휘둘려 하지 못했어
그자들은 더러운 물에 손을 담그려 하지 않았어
내가 세운 조선이다
내가 더러운 물에 손을 담그고 세운 나의 조선이야
내가 온전히 모두 가져야 마땅한 권력이다
그게 나의 조선이고 나 이방원의 대의다
(정도전을 왜 죽였냐는 세종의 말에 태종 이방원의 말)
적재적소 배치하며 그 아비가 그 자식 그렇게 키웠던 것을
지금 소기의 목적 달성하였다 하여 조용히 살려고 하면
더구나 이미 권력의 맛과 그릇의 차이를 확연히 알아버렸는데
정몽주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
본처이자 정실부인의 자식 방원
베갯잇 사연에 방원에게는 계모일 수 밖에 없는 아들의 여자가 세자가 되었으니
보지 않아도 그 전쟁 같던 암투는 과히 짐작하고도 남을 터
나중 그 무덤이 몇 번을 이동하였다 하니 어쩐지 이해가 될 거 같았다
역사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지금 이 방원에게 매력을 느껴간다
어미는 자식을 버리고 죽이지 못하나
아비는 권력을 위해 자식을 죽일 수도 있으니
.
.
.
왜 그런 줄 아니
너는 엄마가 없어서 네가 범인이 된 거라고 하는 마더의 대사를 들으면서
이 세상 제일 가여운 거는 엄마를 잃은 자식의 존재란다
무조건적인 온전한 내 편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내 바느질 솜씨가
무엇이던 뜨개질 책을 보고 짜서 만들어 내던 내 솜씨가 일품인 걸 보면
아마 외할머니와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거 같았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겨울옷들을 스웨터 바지 장갑 모자들을 털실로 짜서 입혔다
연한 핑크의 무늬가 이쁘게 들어간 스웨터와 벙어리장갑들이 정확히 기억에 있는 걸 보면
엄마는 작아진 스웨터의 실을 풀어 김이 서리는 주전자에 스쳐 지나가게 해
꾸불꾸불해진 실을 팽팽히 펴고는 하셨다
나는 실을 풀거나 잡으면서 아버지가 엄마가 감는 모습을 지켜보며
김 서리던 부엌에서 엄마 옆에서 잠들며 혹은 엄마 곁을 지키며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오늘 다 잊은 줄 알았던 내 기억의 조각들이
이 난로가 사진들에 다시 재생되어 펼쳐오니 가슴 한쪽 저릿한 마음들 또한 생겨나니
그렇게 세속에 미련이 남는 것도
가는 세월 애써 붙잡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하루는 더디 갔는데 한 달은 금방이고 일 년은 찰나더니
누가 내 인생을 이만큼이나 가져가 버렸나
새벽녘 두런거리는 엄마 아버지의 말소리는 내게 있어 행복한 음악이었다
내 의식을 깨우고
내 유년의 기억을 일깨우든 아름답든 울림
내 코를 내 얼굴을 쓰다듬다
내 새끼 하며 엉덩이를 마구잡이로 두드려 주던 내 엄마의 손길
엄마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내 콧잔등에 그득히 남아 있는데
꺼이꺼이 울었다
딸과 아들을 차별을 둔 아버지도 아니었고
딸이라고 공부를 소홀이 시켜준 엄마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들 넷에 막내딸 하나라 더 귀히 대접받던 소중한 딸이었던 거 같은데
오늘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이 푹푹 쏟아졌다
그 딸이 그 엄마에게
외할머니로 빙의되어 엄마에게 하는 대사들을 낱낱이 들으며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속 편히 울었던 거 같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여서
힘들고 어렵게 공부해서
국가고시 전공 자격증을 몇 개씩 따고
취직에 필요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들을 습득하고 취직을 했는데
결혼과 한 직장에 두 사람이 근무하는 거는 그렇다 하여
딸아이는 조금 있으면 그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내려앉던지
내 마음이 이런데 아이 마음은 어떨까 싶어 섭섭한 마음 표할 길 없어
그저 내 가슴만 쓸어 안으며 겸사겸사 눈물이 나온 줄도 모르겠다
딸아이는 다른 곳에 경력직으로 이력서를 내면서
또다시 근사한 곳에 한 번 만에 취직을 했다
핸드폰 사진 둘이 있는 거 올리지 마
결혼할 거라는 말 안했제
호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말들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내가 직장생활을 별반 안 해봐서 그런가
딸아이는 자기가 원할 때까지 다니게 하고 싶다
이 영화의 감상평을 적어놓고서는 올릴 날 있겠지만
이런 삶도 있어요 하는
엄마라면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되는 이야기
여자라는 남자라는 편 가르기는 아닌 거 같다
(나도 잘생긴 아들이 있기에..)
우리들의 이야기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는 삶 속에서 그려가는 자아의 성찰
그리 표현하고 싶다
엄마 잘사나
은이는 다른 새 직장으로 경력직으로 간다
우리 엄마가 은이 잘 돌봐 주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처음이라 잘 모르니
그쪽은 두 번째라 날 잡았다며 보내 주더라
(우리 첫째 딸, 그쪽 둘째 아들)
은이는 다 반반씩 내고 할거라며 결혼박람회 가서 식장도 잡았다고 하는데
알아서 할 게 하며 결정된 상황들만 알려온다
4월에 엄마 손녀 결혼한다
아이고 아 가 아를 낳았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너무 빠른 거는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좋다고들 하니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에고 아직은 나는 할머니 되기 싫은데 내가 어디를 봐서 말이다
엄마 시간이 흘러가서 망각의 강을 건너면
서서히 상실의 세월로 들어선다는 것도 거짓인 거 같더라
잊히는 거는 일부분이며 더 각인되어 오듯 선명하게 그리워지는 것도 있더라
어제의 일인 듯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거 보면
그때 조금만 더 잘할 걸 이랬으면 저랬더라면
엄마가 몇 달이라도 더 살다 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점점 더 짙어가는 걸 보면
딸과 함께 지나가는 엄마들을 한참이나 무심히 쳐다보다 몇 번이나 좋겠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엄마 어느 유튜브에서 그러더라
떠나간 사람들 물건 놓아두지 말라고 그 물건 찾으러 들린다는 말을 듣고서
엄마 필요한 거 있으면 찾으러 오고 맛있는 거 해 놓을 테니 먹으러도 와
내 어떻게 사는지 보러 와서 내 보고 가야 한다
그래서 미안하고 사과하는 내 마음도 다 듣고 가야 한다
나도 모르게 엄마 방에 들어가서 내 혼잣말도 자주 하는데
조용히 엄마하고 불러보기도 하고
목소리 톤 바꾸어서 엄마는 하고 고함치듯 부르면서 방에서 나오고는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어서
무엇을 하고 먹든지 엄마의 기억들이 구석구석 배여 있으니
내 어찌 엄마를 저편 저 기억 속에서만 놓아둘 수 있겠노
많이 보고 싶고 그립네 우리 엄마
이렇게 에이도록 보고 싶어 져서 우짜노
사랑해 엄마
오늘은 내 생일이니 내 생일 선물로 아버지 손 잡고 내 보러 꼭 와야 한다
응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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