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걸음 소리만 들렸던 봄날..)
아버지는 술 담배를 안 하셨다
담배는 하셨다가 어느 즈음에 몸이 안 좋아져서 끊었다고 하셨는데
나는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모습과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거 같다
내 어릴 때 내 침대는 아버지 배였다는데
이상스레 배 위에만 올려놓으면 쌕쌕거리고는 잘 잤다고 한다
정시에 퇴근하던 아버지가 늦어질 때면 맛있는 것을 사와
내 귀에다 부스럭거리는 봉지 소리를 내기를 좋아하셨는데
그러기를 나 또한 언제 잠들었냐면 금방 눈을 번쩍 떴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늘 아파서 누워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와의 기억은 많이 없는 듯하다
아버지가 옆으로 나를 안아서 딱 알맞은 온도의 물로 머리를 감기고 씻겼으며
긴 머리를 이야기를 해 가면서 닿아주셨던 거 같다
(아버지는 전집으로 책을 사 놓으셨다
조금커서 조선왕조실록 삼국지 대망을 그 책으로 읽었던 거 같다..)
아버지는 영원한 내 밥
내 편이라고 생각하며 컸던 거 같다
대학 때 늦게 집에 들어가면
그다음 날 아버지는 출근을 하시면서
근엄한 목소리로 자는 내 방을 향해
언제 들어왔느냐고 나중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며 나가시고는 했다
근데 처음에는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까지 조마조마하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진작에는 아무 일도 없던 거처럼 한 마디도 안 하셨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어린이날만 되면 선물을 사 오셨던 거 같다
오빠들은 아들들은 안 챙기면서
딸내미만 챙긴다고 둘째 오빠가 뭐라 했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엄마 아버지한테 한 번도 높힌말을 쓰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결혼생활을 시집에서 시작하면서
집들이 겸 사는 모습을 보러 오셨던 아버지는 혼자서 준비 잘했다며
대견해 하시며 대문 밖을 나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기 몇 날 전
내 방문과 옷 장문을 열고서는 내 흔적들에 우시면서 전화가 왔다
그때는 그렇게 허무하게 가실 줄 몰라
나는 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가벼이 위로 아닌 위로를 던져던 거 같았다
작년 엄마가 하늘에 이사를 하시고
할머니랑 늘 같이 보내던 딸아이는 취직을했다
외우는 게 싫고 계산하는 게 좋다며 공대생이 된 아이가 여러 군데 오라는 곳을 마다하고
우리나라에서 몇위권 안에 드는 건설회사에 안전관리사로 취직을 했다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더니 취직을 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11살이나 많은 본사 대리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지금 사랑에 빠져있는 듯하다
(나는 두살 연하남편인데
이상스레 예전 알던 사람도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은 없었던 거 같아
시숙모들과 시삼촌들의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
무슨 하자가 있어 그리할까 했었는데
내 딸이..
내 눈에는 아직 아기같이 보이는 약한 아이가
회식을 하러 가면 자기만 주민등록을 보자고 한다며 언짢아 하던 딸아이가
사랑은 많이 받을 테지 하며 둘만 좋다면야 하는데..)
딸이 하나둘 전철을 밟으며 과정을 거쳐 지나가면서
시간이 가져다주는 깨달음도 있다지만
나는 다 잃어간 기억들이
아니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 오르며 엄마의 마음들을 알아 간다
나는 내 옆자리에서 내 속함에서 떠나갈 딸아이를 때때로 그리워하듯
내 마음의 무게와 달리 가벼워져 있는 딸의 모습에서
때로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맛보았으며
흔히 먼저 산 어르신들이 그 나이 되어보라는 명언들을 이제야 서서히 이해되어 가는 거 같다
퇴근한 아버지는 저녁을 드시고 나면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커피와 설탕을 넣어서 드시고는
내게 다리와 팔을 두드리게 하셨다
아버지가 잠이 드는 거 같으면 얼른 내 방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때로는 기분 좋게 때로는 짜증도 내면서 말이다
추울 때면 아버지 마중을 나가던 딸의 손을
아버지 주머니 속의 손과 포개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같이 걷던 막내딸이
어느 날 지 사랑을 찾았다며 떠나갔으니
그 누구라도 메꾸어 줄 수 없는
그 비어버린 자리가 얼마나 허전했을까
딸아이가 휴일이면 한 번씩 다니러 왔다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갈 때면
둥지 떠날 때도 되었다며 아이 행복이 그곳에 있는데 하면서도
허전함이 속 깊이 차고 들어
눈시울 적셔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도
우리 아버지도 이 과정을 다 거쳐 가지는 않았을까
좀 더 마음으로 안을 것을
좀 더 다정할 것을
자식의 한마디에 천국을 드나들 수도 있는데
몰랐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는 것에 나를 매몰시켜 버린다
엄마 보낸 지 10년이 넘어가는데도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난다는 친구의 말에
푹 눈물이 쏟구친다
때로는 웃고 있는 나 자신이 보여올 때도 있고
우스운 글과 우스운 내용을 보면서 빙그레 웃음이 띄어질 때도 있다지만
그에 반비례하듯 정점 찍어오듯 명치끝이 저릴 때도 생긴다
어디에 있다 왔을까
어디에 고여 있다 오길래 이리 차갑고 굵은 물방울이 떨어지냐며
내 눈물을 훔칠 때도 생겨난다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에 나 자신 힘들 때도 많다
몇 날은 괜찮은 듯하고
다시 제자리 돌아온 양 몇 날은 그렇지 못한 거 같다
이렇듯 이리 뼈저리게 소중한 사람과도 이별하고
보내고 맞이하고 이게 인생이겠거니 하는데
근데 나는 산다는 거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거는 왜인지
엄마..
벌써 일 년
하루는 더디 갔는데도 벌써
엄마가 가기 전 우리 둘만 보냈던 다섯달의 병원 생활은
하나하나 섬세한 모든 거까지 다 떠오르는데
한해의 그 후는 기억에서 지워져 있는 거 같다
꿈을 쫓아 엄마를 찾아 헤매고
후회의 깨우침과 한숨들로 하루하루 아팠고
아침이 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인 듯 나 아닌 듯 애써 웃음 지어야 했던 시간이
벌써라는 단어들로 매김 돼 가는 거 같다
엄마 지금 행복하나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된다
하늘에도 여기와 똑같은 세상과 풍경이 있다는 생각에 젖어
나 자신 스스로의 위로일지라도
하늘 세상에서 여기서 못다 한 행복 꼭 누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겠다 엄마
그래야 내가 숨을 쉴 수 있겠다 엄마
사랑해 엄마
많이 보고 싶고 그립네 엄마
아직도 엄마 물건이 그대로 인 게 많은데
내 갈 때 다 정리하고 갈려고 말이다
엄마 잘 지내 엄마
아버지 이야기를 한 줄도 못 쓰겠더니
엄마가 가고 나니 하나둘씩 생각나 쓰게 되는 거 같다
.
.
.
엄마 빨리 빨리 이리 와봐봐
젖꼭지 한 번만 만져 보자 응
때때로 부엌에서 일하시던 엄마를 급하게 찾아 부르던 막내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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