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내 엄마와 나의 아저씨

하농17 2024. 3. 17. 10:37

 

어느날 들려왔다

설마 왜 

내 두 아이의 분개 성토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연일 나오는 뉴스를 읽고 들으면서

좀 겸손할 것을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이

왜 좀 더 처신을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을 무렵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설마 하며 뉴스를 찾아 읽었다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나

세월 흐르다 보니 이만큼의 나이가 되어 보니

어찌 한평생 일관성 있게 한 길만을 걸으며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싶다

 

알게 모르게 마음속 사연 하나

다른 이 하나 품었다 내어놓았다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표나지 않게 속앓이로 시작되어 소용돌이처럼 들끓다

끝나는 줄 모르게 지쳐가다 희미하게 사라져들 가는데

 

어느날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 뒤를 한 번씩 돌아볼 계기가 생겨날 때면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하는 대견함도 들 때가 생기는데

 

 

 

 

단죄하는 것도 그의 가족이요 아내일 텐데

나락으로 치닫는 것도 한 사람의 몫일 텐데

근데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의 큰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보다 더한 짓도 다 하면서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내와 자식들은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들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평생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들은

짊어지고 가야 할 마음의 통증들은

 

금방까지도 호흡하며 말 붙여주던 사람이

세상에 남겨진 흔적 하나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아무 상관 없는  나자신도 이리 상실감이 생겨나는데

 

 

 

 

엄마를 보내고 현관문에서 퍼뜩 엄마 방을 쳐다보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모든 게 그 자리 그대로인데

사람만 보이지 않았다

 

며칠 내내 잠만 잤다

자다 깨면 눈물이 나왔고 자면서도 흐느끼며 울었던 거 같다

 

연예인들의 죽음에 딱히 심히 반응하며 살지 않았던 거 같다

단지 그래도 죽는 거보다는 사는 게 나을 텐데 하는

결론 같은 답을 내리며 회피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며 엄마와 같이 병원에 있었고

나의 아저씨가 마칠때쯤 엄마를 보냈다

회색빛의 암울한 대사들에 마음 젖어 들었고

고개 끄덕이며 인생을 되물었다

 

멍한 듯 포기하듯 창틈으로 계절을 감지하는 사이

어느덧 봄이 가고 있었다

 

나의 아저씨는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나의 아저씨를 두 번을 못 보는 이유도

그 대사와 장면들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서도 다시금 읽지 못하는 이유도

 

 

 

 

그러고 보면 이 사람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시베리아 횡단기 예능도 다 봤다

아득히 먼 곳 이 노래도 내가 노래방에 가면 잘 부르는 노래인데

이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는데 뜨끔거린다

마음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하는 말도 안 하렵니다

단지 마음이 이리 안 좋습니다

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해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갑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죄를 지은 사람도 잘 잊고 잘 살아갈 겁니다

그게 인생입디다

.

.

.

 

그래도 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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