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2018년 강창래 작가의 동명 에세이를 옮긴 작품
제주도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떨어졌다
양쪽 옆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섬처럼 앉아 섬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너무 외로웠나 보다
아직도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더 필요하다
아침 7시쯤에 잠이 깼다
올빼미처럼 살았던 평생의 기억은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 버렸을까
늦게 잠든 날에도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면 어처구니가 없다
아내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 회사를 책임지고
일이 우선일 때는 시간은 내기 어려웠지만
암을 선고받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가 걸을 때마다 기꺼이 함께 걸었고
그녀는 함께 걸었던 일 년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날 그 산들의 계단을 생각하며 걸었다
우리는 등산을 하며 오늘 등산으로 몇 년은 벌었을 거야
그런 말을 농담처럼 주고 받았다
그러한 가을 심각한 암 통이 시작되었고
1년쯤 지나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절절함이 담긴 눈빛으로 말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만 더 따뜻한 남쪽 바다 해변을 걷고 싶어
나는 그 기억들과 함께 낯선 에메랄드빛 바다를 외면하고
수천만 년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올린 절벽을 올려다보고 걸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성난 파도를 만났다
아내는 떠나기 전에 켜켜이 쌓인 모든 섬을 풀고 갔을까
미안한 마음으로 파도가 잦아질 때까지 꼼짝않고 쳐다보았다
참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나이가 들고 25년이나 지난 후에야
이제 대화를 해볼 만하니까
한 명이 먼저 가 버렸다
만남과 끝이 이런 거다
서로 사랑했는데 참 어려웠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잘했구나 싶다
이제는 익숙해지지 않은 일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왠지 크게 두렵지는 않다
잘 지내지 별일없지
응 잘 지내
걱정하지 마 나 괜찮아
내가 돌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요리도 별로고 많이 부족했을 텐데
아니야 당신이 해 준 밥 맛있었어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
(어쩌면 이 마지막 말이 지나간 모든 날들을 말해주는 거 같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는데
부엌에서 이런 먹을거리를 만드는데 자연스럽다
이러라고 아내는 그렇게 까탈스러웠던 걸까
낯설었던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의 묵언하에 닮아가며 길들어 가다 어느 한쪽이 떠나가는
그 죽음의 속도가 조금 빠르고 늦을 뿐
떠나가는 사람은 혼자 남게 될 사람을 위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삶의 예행연습을 시키며 떠나간다
죽음이 암이라는 병이 그리 슬프게만 표현되지 않은
남아 있는 사람은 떠나간 사람에게 충분히 최선을 다해
나중 후회의 한숨은 깊은 탄식은 쉬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리움이 어찌 깊지 않겠냐만은..)
같이 마주하며 앉았던 자리가
있는듯 없는듯한 넋두리 같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작은 소리로 대답해 주던 사람이 불현듯 없어진다며
나는 엄마가 떠나간 뒤로는 이별이 영원한 헤어짐이 두렵고 무섭다
바다가 감싸는 그 길을 따라서
음 떠나오던 그날 저녁노을을 기억해
음 버스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서
바라보던 풍경 모두 잊기 싫은 것뿐이라
발길 떼어놓으면 다시 마음이 붙들고
마음 떼어놓은 그 곳은 다시 추억이 붙잡아
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고 했나
아니 나는 자신 없소 아직 이별은 힘들어
매일 이별이라고 그는 노래했었지
이제 나도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다오
어디 이별 없는 곳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 그곳 어디라고 말하는 이가 없다오
아 서러운 것이 어디 이별뿐인가
매일 헤어지는 저 달이 날 보며 달래는듯해
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고 했나
아니 나는 자신 없소 아직 이별은 힘들어
우리 우리들의 이별
우리들의 이별 / 정밀아
'관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엄마와 나의 아저씨 (0) | 2024.03.17 |
---|---|
색 바랜 갈피마다 (0) | 2022.12.17 |
잠적 그외 문득.. (0) | 2022.02.17 |
Mr Jones 2019 (0) | 2021.02.17 |
나부야 나부야 외.. (0) | 2021.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