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여전한 것이 주는 위안이
소리가 나를 홀린다
발끝을 타고 심장 결에 간질인다
일정한 리듬으로 찰박거린다
까무룩 잠들 무렵 가슴을 토닥여 주던
엄마 손길처럼 일정하게 토닥토닥
그 토닥토닥임은
하루 끝의 걱정도 슬픔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었다
파도 소리에 혼란하던 마음이 잦아든다
별것 아닌 게 된다
햇볕에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탁탁 털어 널어본다
바삭바삭 햇볕 먹은 마음이 된다
외딴곳에 혼자 머물러 나를 생각한다
그저 멈추기를 바랐던 나는 지금 멈추어서 좋다
어두운 길 끝엔 반드시 쨍한 빛이 있다는 것을
뜨겁든 해는 가깝게 다가서 있고
물소리 풀잎 소리 산의 생명이 한데 어울려 만드는 리듬
계획에 없던 여정이 거짓말 같은 풍경으로 나를 이끌었다
무모해져도 좋은 일이다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한 발 더 가볼 일이다
그리하여 나만의 길을 내 볼 일이다
목울대가 울렁거리던 설렘도 잦아들고
냄새 외 기억을 그리워하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한여름 소나기 소리 같다
이 길 끝에 10살의 내가 있다
직접 달려봐야만 비로소 그 길을 알게 된다
운전대를 잡고
내가 내 방향을 정할 때만이 발견하게 되는 풍경이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알고 싶은 길로
더 보고 싶은 풍경을 골랐고
땅이 끝나 바다와 맞닿는 곳에 있다
거제도
길목에 있었다
뜨겁던 날은 지고 새벽이면 한기가 도는 새 계절의 길목이었다
종종 이유 없이 국밥이 먹고 싶어진다
어둠의 끝 그러나 여전히 잠들어 있는 거 같은 아침
나는 낯선 길목에 머물러 있다
어디로 갈까
뜨겁게 속을 채우고 하루의 전투를 준비하던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던 아침
식당은 조용하다 그런 시절에 멈춰있는 우리다
한기를 잠재우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여기서 시작한다
새 계절의 길목
멈춰있는 시대에 나는 여전한 뜨거움으로 잠적이다
이유 없이 국밥을 떠 올린 거는 아니다 온기가 필요했다
속은 데워지고 해는 높아진다
바글바글 끓는 온도 익숙한 맛 오랜 기억으로 덜 깻던 생각이 또렷해진다
광주극장
내내 그리웠던 건 이런 낡음이다
오랜 시간 변치 않는 것들이 전하는 안도와 위안이다
가만히 있었다 80 중년의 시간이었다
조급한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만히 드나드는 이들이 줄고
찬란했던 한때는 갔더라도 극장은 전해준다
길고 긴 시간의 이야기들을 가만히 견뎌온 세월의 열렬한 힘을
(임검석 / 일본 순사들의 영화 검열 불순한 내용이라 하며
세변 호각을 불면 영화를 중지 시켜 버리는
우리의 문화 역사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거 같다)
그 옛날 극장을 짓고 오래도록 지키라 하셨던 어르신은 혜안을 갖고 계셨을까
백 년 가까운 세월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위로해주는 그 위대함을 믿으셨을까
꿈이다
내겐 꿈을 이루게 한 공간이고 꿈을 펼치게 될 공간이다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시절에도 나를 뛰게 한 나의 꿈이다
잃었을 때 알게 된다 얼마나 애정했던가
그러므로 나는 잠적중에도 여기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극장이 주는 힘 가혹한 날들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영화가 있었다
보는 이가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마음을 보듬어 주는 작품들이 존재했다
극장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지금의 이 고난도 지날 거라고 울음도 웃음도 다 담아내 온
86년의 시간을 빗대어 보면 그저 찰나가 아니겠냐고 텅빈 객석에 앉아 다시 꿈꾼다
기억 속에 있는 맛 아는 맛 그리웠던 맛이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서
후루륵 후루륵 소리에 말소리가 묻히도록 들켰던 면의 맛이다
그리웠던 골목을 흟고 마음이 부른다
다시 길을 떠나 볼까 (달리는 와중 개여울이라는 음악이 흐르는데..ㅋㅎ)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 잇고 또 이어 만든 다리
섬섬길을 달린다 바다 위 백 리를 달려 홀로 외도로 간다
달리는 중에 어둠을 만난다
괜찮다 한낮의 복닥임은 까만 밤 속으로 숨고
몸도 마음도 고요히 쉬어가라 한다
혼자 서울을 떠나와 아래로 아래로 밤바다를 노래하는 여수에 잠적
물에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뭐 별거 없다
광주에선 광주의 그리운 맛 여수에선 여수를 기억하는 맛
느린 잠적
괜찮아 괜찮아하는 다독임의 잠적
밥 술 야구 천천히 머무르는 법을 생각한다
숨 고르기를 한다
이것이 나의 잠적의 이유일 것이다
밤의 표정과는 또 다른 여수의 맑은 아침을 마주한다
절기는 정직해서 도시의 새벽은 한기가 돌았는데
남도의 바다는 아직 온화하다
어디로 갈까 사실 어디든 상관없겠다
간밤에 봤던 밑그림 위에 솜씨 좋은 누군가가 덧칠해놓은 것 같은 아침
잔잔한 풍경 가운데 게을리 앉아 있어도 좋겠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잠적해서도 좀체 숨 고르기를 할 줄 몰랐던 어제
나와는 다른 내가 여기에 있다
목적한 거는 하나다
느리게 느리게 깊은숨을 들이 쉬는 잠적 둘째 날을 살 것이다
유명할 것도 빼어날 것도 없는
그냥 나여도 좋은 곳을 찾아서 배를 타고 가는 섬
이 여정이 낯설어서 좋다
눈길 닿는 곳마다 새로움이서 특별하다 설레임이다
모든 게 멈추어 버린 시절이라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고
그렇게 나를 담금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속도를 줄이는 게 겁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나를 새 길목에 놓는다
바다의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흐른다
길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나아가면 그 또한 길이여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낸다
섬에 가 닿는다
도시를 떠나 골목으로 잠적했고 다시 바다로
또다시 작은 섬으로 닿을 수 있는 끝에 끝을 찾아 나선다
벌써 섬의 바람이 다르다
( 때마침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하는 가요가 나오는데 찾아봐도 없다)
길이 끝난 곳에서 배에 차를 싣고 바닷길을 달려 금오도에 닿았다
해안을 따라 배 안길을 달리고 섬의 한가운데를 가른다
여기가 끝인가 하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나고
나는 그게 좋아 이름도 모르는 섬마을의 길과 길을 달린다
길 끝에 홀로 서서 오롯이 바다만 마주해 보겠다고 나선 참이었다
섬이란 결국 바다 위에 고립된 점 아니던가
땅의 끝 길의 끝이란 게 있기 마련 아닌가
그런 생각에 끝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틀렸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섬들조차 홀로 둘 수 없어서
다리를 놓고 잇고 또 이어 나가는 게 우리다
외롭지 않으려고 치열한 게 또 우리다
(속엣말 / 우리들의 마음이 저 바다처럼 저렇게 넓어져야 하는데)
섬과 섬 사이에 서 있다 원하던 원치 않던 고립이 일상이 된 시대
무너져 버린 우리를 일으키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노력 아닐까
그사이에 생겨나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지치고 두려웠던 날들에 용기를 얻어간다 울컥했던 마음은 잦아들고
끌어안고 있던 시름은 별게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바다 위에 서 보길 잘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다시 뭍으로 데려가 줄 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예정에도 없이 잔물결이 일고 잔잔한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 닿았다
파도가 거세게 달려들진 않아도 쉼 없이 꾸준한 것이어서
해변에 검은 돌들은 모진 데가 없이 반질반질 제빛들을 낸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세우고 격렬하게 부딪혀야만
빛나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잔잔한 파도 아래서 반짝이는 몽돌을 보며 깨닫는다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말자
잔잔하고 너그러운 파도 소리
물결과 돌이 만들어 내는 반짝임 이걸 오래 오래 기억해야겠다
이런 속도도 괜찮다 적당한 거리 두기도 좋다
흘러간다
그리움이 짙어지는 밤이다
삐걱이는 마루 짙은 나뭇결에 벤 시간의 흔적
건축이 곧 기억장치라고 밀어버리고
덮어두고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게 아니고
역사의 상흔을 생활 공간으로 끌어들여 잊지 않고 살아가는 거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 갈치 조림 맛에 소주 한잔에 쓸쓸함이 깊어진다
어떤 맛은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을 삽시간에 불러오기도 한다
그래서 좋다
혼자 떠나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에 홀가분함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쓸쓸함이 되고
떠나온 건 나인데도 문득문득 서러운 마음이 든다
고백하자면 떠나는 순간 돌아갈 날을 기다린 것이 나의 잠적이었다
내가 있는 현실로 빨리 가고 싶다는 맨날 벗어나려고 노력만 했는데
돌아가야만 한다와 돌아가고 싶다는 다른 의미니까
그러나 나는 내일 잘 마무리하고 가고 싶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쓴다고 해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거기라는
천천히 케이블카의 리듬처럼 돌아가고 싶다는
담담하려고 애쓰도 내내 그리움에 울컥였던 여정이었다
구석구석 햇살이 들어찬 집은
어제와는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밝고 따뜻하다
(이문세의 기억보다 사랑이라는 음악이 들려온다 )
아끼지 않고 다 내어주는 품으로 돌아가는 거는 당연한 이치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며
그의 자부심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응당해야 할 몫이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이유다
나를 제대로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조금쯤 가벼워졌고
여전히 사람들 가운데 머무는 것이 제일 좋은 사람
숲 사잇길로 들어선다
도심에서 멀어져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섰다
주소도 이정표도 없는 가느다랗게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이끌리는 듯 걷는 걸음 끝에
내가 그토록 보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땅끝에 닿았다
묵묵히 제 방향을 가리키고
칼바람 바닷 바람도 굳건한 등대를 찾았다
등대 말이 필요 없는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는
저렇게 살아야 되나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분명한 건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은 비움과 채움이 있다는 거
그거는 확실한 거 같다
잠적을 시작할 때 나는 길목에 서 있었다
긴 터널을 지나며 두렵고 막막했다
여전히 나는 길목에 서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길 끝이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이라는 것을 그거면 된다
(잠적 중에서..)
.
.
.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작품을 선택하고
어차피 모든 일은 흘러간다는 지론 아래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웃기고 울고 위로하며
사람들의 감정에 동조되어 움직이는 배우
광대라는 직업을 잘하고 싶다는 이 남자
좋은 거에는 좋은 걸 더 해주어야 한다는 이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반찬이 다 안주로 통한다
어딜 가던 먹는 음식이 곧 행복인 거 같다
여수바다에 뭔가를 버리고
고마움을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며 눈물이 핑 돌던 사람
감격과 울컥임이 수시로 교차하듯 눈물 맺혀 들어 무안해져 올 때면
갱년기 핑계를 대며 스스럼없이 노안이라 읋어대던 이 남자
잘 살았나 하는 물음표를 자연에게 동화되듯 던지며
도심과 시골에서 비추는 해가 어디에도 똑같다며
자연스러운 게 좋다며 동의를 구해 오던 사람
파도가 뭔가를 가지고 가는듯한 섬에서
바다와 나
그뿐이어서 좋았다는 이 남자
차를 가르는 길 위에 뒹구는 낙엽들
그 위로 억색풀들이 몸을 옆으로 뉘이고 있었다
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 남자의 잠적 위로 가을의 채색이 물들고 있었다
길들은 서로의 목적 위에서 닮아 있는 듯하다
나는 어느 날의 기억으로 데자뷰를 하듯 진한 울림으로 인한
눈에 들어오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저 길 어디에 나도 서 있었던 적이 있는데
아니 차장 밖으로 시선 두며 하염없이 흘러갔으면 하던 때가 있었는데
내 온 촉각은 옆을 향해 있었고
걷잡을 수 없이 스쳐 가던 길가의 풍경에 맺혀 들던 감격과 버금가게
묘연히 슬퍼지던 어느 날의 초상이 있었는데
길은 서로의 모습으로 닮아 가나보다
그 길 끝에 우리가 서 있는 거 같다
이 남자의 잠적이 좋다
수필집같이 매끄럽게 흐르던 대사에도
수채화 같은 옅은 풍경에도
가만히 노크해 오는 군데군데 걸맞은 음악에도
깊이 매료되어 내가 어디로 떠나 있듯
설렘 가득으로 이 남자의 잠적을 지켜본 거 같다
나는 또 다른 날 또 다른 이 들의 잠적을 천천히 엿보고 음미하며
내 삶에 투영해 갈 것이다
우리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잘 어우러져 버무려져 있다
소녀에서 여자 엄마와 어르신들의 대사에서 생겨나는 엄마의 기억에
명치끝이 아려와 울컥일때 생겨나는 습기 머금어지는
잔잔한 수채화 같은 풍경의 프로 였던 거 같다
적어도 내게는
잘 살아가자 지금의 시간을
과거는 과거의 추억으로
나중 내 미래의 나를 대견하게 쳐다볼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내 가족이 내 곁에서 떠난 후
그 빈자리가 후회의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냉장고 앞에 서서 머뭇거리는 날 생겨가지만
그래도 선명히 떠오르는 부분들이 있다
눈 오던 소백산의 하얀 설원
새벽녘 커튼 걷으며 은빛 햇살 속에 드러나던 속살들의 나무
길을 지우며 수북이 쌓여 있던 눈
그날의 날씨 속의 습도
그 온도 속에 내가 가져졌던 생각들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마음속 카메라로 담아내던
고개 들어 새겨 보던 신비로운 풍경들
나는 어디로 사라지고 싶을까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핑계 하에
아니 혼자보다 둘이 좋았기에
마냥 설렜던 그 날들
그해 우리는
어느 날 내가 그리던 풍경에서는
그는 항상 젊은 모습으로 떠오른다
나만 세월 속에 묻혀갔던 걸까
내가 변해가듯 그 또한 시간 속에 바래져 갈 텐데
내가 기억하는 목소리는
추억하는 모습은 항상 청년의 모습이다
뭐가 그리 그리워지고 보고프랴
그래도 애써 기억하지 않은데도
문득 불현듯 한 번씩 고개 내밀어 둘러보는 걸 보면
지금은 끄덕여지는 것들이 그때는 왜 그리 보이지 않았을까
어쩜 지금의 생각들도 나중 읽히어질지도 모를 테지만
그러고 보면 지금의 과정들은 나중의 결과물인 것도 같다

지나간 것들에 담겨있는 모든 의미는 다 소중하고 그리운 것을
여전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안도감
내일이 오늘만 같아라 하는 지론이 요즈음의 내 마음인 거 같다
가을이라 꽃 달고 있는 여자 부지런히 움직이듯
춥다는 기색이 어느새 스며들어 올 때면 모든 게 정지되어 버려와
또아리 틀어 겨울잠 자듯 내 둥지에서 움을 트며 몸을 감아 버린다
또렷이 비추어 오는 겨울 햇살에 내 온 몸을 맡기며
봄인지 겨울인지 모르게 덩달아 잘 자라주며
꽃을 피워대는 우리 집 화초들과 함께 노오란 햇살과 마주하고 있다
내 거실에서 보여 오는 풍경들
거실 가득 은은히 들려오는 음악
여명의 새벽이 가져다주는 하늘의 마술
시시각각 변해가는
한 번도 같을 수 없을 거 같은 해 질 녘 노을의 신비로움이
가끔 찾아오는 내 우울의 전조를 차단해 준다
여기가 내 잠적이요 쉼
섬은 아닐까
겨울 그 어느 길목에서 봄이 손짓하고 있는 거 같다
계절은 어김없이 제 본분을 다해들 듯 찾아들어
이 계절 끝에서 우리들 마음을 또 다시 피우라 한다
얼음장 밑에서 졸졸거리며 봄이 오는 소리 들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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