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꽃자리마다 그늘이 머물고 / 장용림

하농17 2023. 5. 17. 10:37

진달래 피다, 사랑이다

 

 

진달래, 바람에게

 

 

숨, 응시하다

 

 

복사꽃, 바람이 불면

 

 

저만치 홍매화가 피고

 

 

홍매, 숨을 쉬다

 

 

홍매, 숨을 쉬다

 

 

숨, 꽃을 스치다

 

 

숨, 응시하다

 

 

매화, 숨을 쉬다

 

 

매화, 바람이 불었던가

 

 

삼월, 춘설이 들이치다

 

 

배꽃피어 사월을 전하고

 

 

배꽃

 

 

배꽃 2

 

 

숨, 오동꽃을 스치다

 

칠팔월의 무더위도 맨 얼굴로 견디던 오동잎이 구월로 달이 바뀌자

툭 하고 그림자처럼 떨어진다

두 손바닥을 펼친 것보다도 넓은 잎이 뒤척이며 땅바닥을 긁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숨이 훅 다가온다

곧게 서 있는 오동나무를 올려다보니

잎 하나 비워낸 것뿐이라는 듯 무심하다

 

하늘을 어둡게 가리던 짙푸른 잎들이 순간 사라지고

환영처럼 오동꽃이 오동색으로 환하게 피어난다

 

 

 

오동꽃, 바람이 지나고

 

 

오동꽃이 피였다는 소식

 

오동색…. 보라색이라는 색을 알기 이전에

엄마는 내게 오동꽃의 꽃빛으로 오동색이 보랏빛이라는 것을 일러주셨다

엄마에게 연보라는 오동색

진보라는 가지색으로 당신만의 색을 물들이셨던 것이다

 

 

 

오동꽃 내리는 소리

 

내게도 오동꽃의 보라는 여전히 오동색으로 읽힌다

늘 빨강과 파랑의 경계에 올려놓았던 색이

또 다른 색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오동나무꽃

 

천년을 늙어도 항시 제 곡조를 지니고 있다는 오동나무

그리고 오동꽃의 향기

구월 첫 오동잎이 지는 날

달항아리처럼 환한 보름달 아래

오동꽃이 오동색으로 등불을 밝히던 지난 오월 봄밤을 그려본다

 

 

 

등꽃, 보랏빛 바람 그늘에서

 

 

목화, 친애하는

 

 

찔레, 바람이 멈추었을때

 

횟대에 걸린 두 편의 저고리 그림은 화가가 그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화가이다

찔레꽃과 동백꽃을 배경으로 한 저고리들은 횟대 위에서 바람을 맞는다

찔레 바람이 멈추었을때 라는 제목은

그림의 제목이라기보다 시의 제목에 더 어울릴 것 같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초등학교 시절 그의 꿈이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에게 그는 시가 무엇인가 물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가장 착한 말로 쓰인 글이라는 답을 주었다 한다

화가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의 작업들 또한

가장 착한 붓으로 그려진 사랑의 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찔레꽃이 핀 강변에 어머니의 저고리가 걸려 있다

강은 흐르고 바람은 멈추었지만 마음속의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연분홍 옷고름이 잠시 바람의 형상을 보듬고 허공중에 머물고 있다

 

한국인의 원형적 색상의 중심이 흰빛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이들이 꿈꾼 완벽한 미학적 색상의 이름은 연분홍이라고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연분홍 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들 가슴의 한 가운데 어떤 설렘의

어떤 서러움의 강물 하나가 흐르는 것을 느끼는 탓이다

 

 

 

꽃이 핀다, 사랑이다

 

어머니가 만든 조각보들로 꽃들을 감싸 안은 화가의 그림들은

꽃과 조각보의 화혼례로 느껴진다

그녀의 세계의 이데아인 꽃과 그 꽃의 개화가 빚어낼

또 하나의 풍경으로 어머니의 조각보를 연결시키는 것은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매화피다

 

조각보로 매화꽃을 가린 작품 매화 피다도 내겐 어머니의 마음으로 읽혀진다

이때의 조각보는 햇빛 가리개로 쓰이는데

현실에서 조각보로 매화꽃을 가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갓 피어 싱싱하고 아름다운 매화꽃 위에 드리운 조각보를 보고 있노라면

조각보 뒤의 숨은 매화꽃들의 은은한 향기들이 느껴진다

작업실 한 쪽 출입구에 놓인 햇빛 가리개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동안

나는 화가의 마음이 도처에 산재함을 느낄수 있었다

 

 

 

매화, 소식

 

 

달빛 그늘이 내리다

 

 

봄밤, 달빛이 일어

 

 

비비추, 바람이 바람으로 풀리듯

 

 

쑥부쟁이

 

 

숨, 꽃이 되다

 

 

달개비, 이슬꽃이 피고

 

어느 날 화가의 아버지는 귀가 길에 달개비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왔는데

며칠 뒤 이 꽃은 시들어 뒤뜰에 버려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다 죽은 꽃줄기를 삽목했는데 놀랍게도 

이 꽃은 다시 살아나 무성한 꽃밭을 이루게 되었다

 

작품 달개비는 바로 그 꿈의 개화를 형상화 한 것이다

쪽물 들인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남도의 아낙이었던 어머니는

그 보자기에 한 가닥 하얀 빛의 무명천을 달아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유토피아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가

쪽빛 보자기와 하얀 무명 천 달개비 꽃의 보라색 향훈 속에 머문다

 

 

 

달개비, 친애하는

 

 

쪽빛내음 풀리는 칠월에

 

 

윤사월

 

 

숨, 응시하다

 

세한 추위가 심했던 지난 겨울

시린 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푸른 숨이 곁을 스쳤다

소나무 둥지밑으로 전지를 하는 정원사들의 손끝에서

소나무 가지들이 속절없이 쏟아졌다

 

싸한 기운의 숨이 주변을 휘감고 돈다

잘린 소나무 가지에는 송진이 맺혀 있었다

햇빛에 닿은 송진이 별처럼 반짝인다

공기마저도 날이 선 듯 얼어붙은 한파에

푸른 소나무는 맨몸으로 제 상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잘린 소나무 가지를 발치에 드리우고

그저 제 자리에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며 흙을 움켜쥐고 서 있는 것이다

한 생애를 세운 자리의 그늘이 완강하고 단단하다

사시사철 오고 가는 길목에 있던 소나무가 한 겨울 세한에 숨으로 느껴지는 일이 사뭇 낯설다

 

굳이 완당의 세한도 속 소나무와 잣나무를 말하지 않더라도

완당에 대한 이상적의 일관된 도리나 의리를 송백에 빗대지 않더라도

소나무는 그렇게 변함없이 시듦을 모르고 한결같음을 스스로 보여 주었다   

 

 

 

숨, 응시하다

 

생이 그러하듯 꽃피는 일만을 바라봤던 시선이 잎으로 닿는 순간이 있다

잘린 소나무 가지 하나를 주워와서 작업실 한 켠 작은 달항아리곁에 꽂아두었다

인식이 아닌 체험으로써의 경험은 또 하나의 세계를 엿보게 되고

꽃이 아닌 잎의 형태에서 숨의 형상을 겹치듯 찾아보게 된다

 

솔잎의 푸른 빛은 오랜 전설을 품은 듯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듯한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소나무 가지의 솔잎과 한 공간에서 겨울을 나며

윤기 흐르는 봄 잎들의 반짝임이 이는 사월까지 함께 건너왔다

 

푸른 솔의 청청함은 속으로 잦아들었지만

그가 품고 내쉬는 숨은 아직도 생생하다

허공을 받치고 응시하는 소나무의 시선 끝에 닿았던 달을

공간 속으로 내린 후 살짝 다시 들어 올려본다

 

달항아리의 형태가 갖고 있는 형상은 비할 데 없는 분별없음이

지상에 온전히 닿지 못하고 허공에 발 딛고 자신의 자리를 부유하듯 찾는다

푸른 솔은 시선과 공간을 바꿔 달그림자의 질감 속으로 고요히 찾아 든다

 

추위를 견디기 위한 솔잎의 바늘잎들은

달항아리의 품에서 온기를 찾고 순한 빛의 꽃잎처럼 개화를 한다

소나무가 품었을 바람과 햇볕과 비와

난부분 날리는 꽃잎 같은 눈송이와 함께 했던 시간을

달항아리의 품에서 고용히 풀어놓는 것이다

 

그 찰라를 지나는 붓의 반복되는 스침은

솔잎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숨의 축적된 시가의 흔적으로 번지기도 한다   

 

 

 

숨, 응시하다

 

달항아리는 숨의 원형으로써 모든 사물을 두루 품는 대지와도 결을 같이 한다

불 속에서 견뎌낸 흙에 닿은 따사로운 온기를 갖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그 어떤것이라도 품에 들여 놓을 줄 아는 심성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소나무와 달항아리가 공간속의 호흡으로 하나의 숨을 이룬다면

매화와 달항아리는 대지 즉 씨앗으로 매화 한 그루를 자신의 품에 기른다

매실의 씨앗이 발아하여 여린 싹이 대지를 가르고 자라는 것처럼

달항아리의 호흡을 자신의 터전으로 여기며 매화나무는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달항아리의 미묘한 굴곡에 잔금을 그으며

가지를 뻗어 길을 내고 꽃을 피워낸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매화가지는 자신의 존재를 느슨하게 풀어놓기도 하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당기며 뻗어 가기도 한다

 

어쩌면 달항아리는 자신의 숨 속에 품고 있던 꽃들을

몸 밖으로 밀어내며 피워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숨과 숨 사이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숨을 끄집어내듯

매화를 피워내고 매화는 침묵만으로 서로의 숨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숨, 응시하다

 

들숨과 날숨의 반복은 꽃이 피고 지는 일처럼

꽃 진 자리에 잎이 채워지는 일과도 같을 것이다

반복되는 행위는 다양한 겹침의 변주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달항아리의 둥근 형상에 꽉 채워진 숨이 조금은 헐거워질 때

어떤 암호나 기호처럼 읽혀지는 또 다른 숨이 있다

들숨과 날숨의 간극을 오가는 호흡이 둥근 형상으로 모이기도 하고

붓의 흔적들로 날리며 흩어지면 색을 빚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달항아리의 유백색은 백(白)색을 우려내고

우려낸 듯한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표정으로 꽃과 잎을 품는다

 

달항아리의 둥근형상은 그저 꽃의 그림자처럼 여백으로 남기도 하고

하나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공간을 채우며 자신을 밝혀내기도 한다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끝끝내 남아있는 솔잎의 푸른 빛과 여백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는 푸른 숨 앞에서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춘다

그리하여 붓이 지날 때마다 지층처름 쌓이는 흔적으로 숨을 대신한다

 

 

 

꽃인, 듯 그늘인, 듯

 

 

서슬 푸른 그늘이 지나다

 

 

소리, 그늘

 

 

꽃, 숨

 

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쟁이의 삶을 걸어오는 동안

꽃은 화가의 세계의 영원한 화두였다

한 작가가 평생을 바쳐 싸울 화두를 지닌 것은 지극히 행복한 일일 것이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 든 이까지 누구든지 다 알아볼 수 있는

쉽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거라는

그의 말이 내게 세상의 어떤 예술론보다 진실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흔한 냉난방 기구 하나 없이 꽃과 시집이 함께 숨을 쉬는

그의 작업실에 머무는 동안 지상에서 만나기 힘든

따뜻한 한편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 있었다

 

 

 

찔레꽃이 피었다는 소식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결

찔레 향처럼 피어나는 이야기 바람과 강과 그늘과 시간들

그 모든 풍경들 곁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싸드린 도시락

물기 드리운 무영천에 싼

촉촉한 시간의 강물이 흐르고 있으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며 꺾어오던 찔레꽃 한 송이

그 마음만큼 부드럽고 맑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신비한 영혼의 향기가 펼쳐지고 있으니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동백, 숨을 쉬다

 

 

목화꽃, 숨을 쉬다

 

 

숨, 응시하다

 

 

청매 소식

 

저만치 청매화가 피고

 

 

청매화

 

 

목화, 바람으로 누벼지다

 

목화솜 꽃과 조각보가 어울린 일련의 작품들은

화가의 어머니의 삶에 바친 뜻 깊은 마음의 선물로 읽혀진다

목화솜 꽃은 무명천의 질료이기 이전에

어머니 마음의 원형질이기도 한 것이다

 

참고 글 / 장용림 곽재구 한국시민기자협회

 

 

 

개망초, 바람의 안부를 물으며

 

 

구절초, 바람의 인사

 

 

망초꽃, 꽃자리마다 그늘이 머물고

 

 

그늘도 저물어

 

 

인동초, 바람을 기다리며

 

 

인동초

 

 

오월, 찔레꽃 그늘처럼

 

 

명자꽃이 피었다는 소식

 

 

목화솜 꽃이 피였다는 소식

 

 

목화솜 꽃이 피고

 

 

시월의 목화 그늘

 

 

목화, 친애하는

 

 

목화 바람이 불고

 

 

숨, 꽃을 스치다

 

 

목화, 바람이 지나고

 

 

동백, 바람이 지난 후

 

 

찬그늘 뜨거운 적멸

 

 

동백

 

 

붉은 정한으로 물들어

 

 

장용림

 

전남대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미술학과 한국화 전공 과정을 졸업

전통과 형상회 그룹새벽회 진경매화회 회원으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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