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의 내 봄날.. )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1983년 6월1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었으며
1908년까지 존속하였던 낙안군의 중심지 임경업군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성곽과
내부 마을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해마다 5월에는 낙안민속문화축제 10월에는 남도음식축제가 열리며
전통 한옥들이 있으며 현재 실제 주민 120세대가 거주 중이다
또한 600년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유일하게 읍성과 민속마을이 함께 조성된 관광지로
수학여행 현장학습 방문지로 교육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현재 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으로 등재되고
미국CNN에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순위 16위로 선정된 역사유적지이며
대장금, 동이, 상도, 감격시대 등 TV 드라마와 디워 태극기 휘날리며 등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낙안읍성의 각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편에는 장승과 솟대가 세워져 있다
작은 화분에 담기어진 잎새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걸어볼만한 길이라고 했는데
나 혼자였으면 걸었을텐데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
조선 태조 6년(1397)에 처음 쌓았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며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낙안읍성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소개한 거 같았는데
타박타박
초등학교 때부터 아파트에 살아서인지
흙을 밟고 걷는 이 길이 색다름으로 다가왔다
경주 양동 마을
안동 하회마을에도 이랬는데
돌탑 쌓기는 민속신앙같다
도자기 마을로 들어선거 같다
다른 곳과는 달리 여기는 일반 사람들이 묵어갈 수 있는 민박시설이 갖추어진 듯 했다
동네의 전체분위기는 신기 아기자기 깨끗했다
지방행정을 처리하는 조선시대 관아 동헌
낙안읍성 안에는 특이한 관청 건물이 있는데 죄인들을 가두던 옥사다
남문으로 가는 길목 왼쪽에 위치하며 전면 5칸의 우진각 지붕으로 2002년 복원된 것이다
다른 관청 건물들은 팔작지붕인데 옥사를 우진각 지붕으로 한 것은 위계를 낮게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툇마루를 따라서 일렬로 감방들이 배열되어 있고 칼을 쓴 죄인을 비롯해 다양한 모형들이 설치되어 있다
다른 고을의 경우 관아 옆에 옥사가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관아와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담장은 2.5미터 높이로 여타 담장보다 높게 쌓았으며 주변에 연지(늪)를 두어 죄수들의 탈주를 막는 장애물로 이용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집터로 피해야 할 아홉 곳 중 하나로 옥문과 마주 보는 곳을 꼽았다
그럼에도 옥사가 굳이 주거지 속에 있는 이유는 주민들을 상대로 교육장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친구들이 고문당하는 흉내와
소리를 너무 실감나게 재현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으윽
딸아이 카메라 건전지를 여유분으로 가져왔는데 차에다 두고 왔다
다시 가지러 가기도 그래서
친구 핸드폰으로 찍으라고 했는데
나중 남편 핸드폰으로 보내온 사진들을 보니
에고 화질이
5월은 붉음의 계절, 장미의 계절은 맞는 거 같다
우리 동네 아파트를 내려가다 보면
해마다 제일 먼저 보는 노란 장미가 참 이뻤는데
이날 날씨가 선선했던 거 같은데도
담벼락에 붉은 장미는 불이 타는거 같았다
남내리 골목 안에 있는 천연 우물 큰샘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깊은 우물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 중 여러 곳이 풍수지리에서 행주형으로 성내에 깊은 우물 파는 것을 금했는데
낙안읍성도 그런 예다. 배는 물에 떠다니므로 언제나 가라앉을 위험이 있어 우물을 파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낙안읍성을 행주형으로 인식하는 것은 나름의 해석에 의해서다
배의 닻은 향교의 뒷산 돛은 성내의 동내리와 남내리 마을에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 노는 성곽을 따라 있는 노거수에 해당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낙안읍성을 찾는 것은 배를 타는 것으로 인식한다
우물이 없다면 낙안읍성 사람들은 식수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다행히 마을 중앙에 1미터 정도의 낮은 천연 샘이 있어 식수 공급은 걱정 없었다
풍수에서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은 금지했지만 천연 우물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배 안에 고인 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배 안에 들어 온 물은 퍼내야 안전하므로 천연 우물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천연 우물은 물이 깊지 않은데도
가뭄 때나 우기 때나 마르거나 넘치지 않고 별 차이 없이 본래 수위를 유지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남내리 골목 안에 있는 우물이다
큰샘 또는 미인샘이라고 하며 원님이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더구나 예로부터 이 물을 마시면 심성이 고와지고
얼굴이 예뻐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외부에서도 많은 사람이 떠가는 명수다
남내리 마을에서는 이곳에 정월 초삼일 우물제를 올리고 있다
그래서 나도 소원지 하나 쓰고 왔다..ㅋㅋ
진짜 내 바람대로 이루어졌으면
그래 이루어 질 거야
계단으로 올라와서 나가는 길에 성곽을 따라 걸었다
남문에서 동문 낙풍루까지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가지런하게 배열된 것이 구획 정리를 한 곳이라 그런지
정돈이 잘 되어 있는 거 같았다
채 받침 같이 생긴 지붕
버섯 기둥같이 생긴 지붕
전형적인 초가지붕
오밀조밀 옹기종기
서민들이 사는 집이라 정겨움과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전통 마을의 경우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뚜렷한 위계질서를 이룬 데 반해
낙안은 양반들보다는 관에 출입하는 아전들이나 가난한 서민들이 주로 살았다
양반들이 낙안읍성 안에서 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관과 관속이 있는 고을에서 벗어나 향촌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방관들은 한 지역에서 2년 정도 근무했으므로 양반들은 굳이 그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낙안읍성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민초들이고 이는 거의 모든 주택이 초가집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집은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一자형 가옥으로 방과 마루,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부엌, 큰방, 작은방 등 3칸이 나란히 배열된 초가삼간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에 있는 3칸 집은 부엌에서 방 3개를 동시에 난방하도록 구들을 놓으나
낙안읍성의 몇몇 집에서는 작은방 앞에 아궁이를 따로 두고 큰방과 별도로 난방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여름철에 부엌에서 밥을 하더라도 작은방은 난방되지 않아 모든 방이 한증막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굉장하다
온 동네 장독을 한꺼번에 모아 놓았나
아니면 빈 항아리인가
설마
근데 어떻게 찾지
이름을 쓰 놓았나
.
.
.
낙안읍성에서 초가삼간 다음으로 많은 주택이 4칸 집이다
3칸에 대청을 하나 추가한 것으로 큰방과 작은방 사이에 들어간다
4칸 집에서 작은방 즉 건넌방은 사랑방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따라서 방의 마구리 쪽으로 문을 내 옆에서 출입함으로써 다른 부분과 어느 정도 구분한다
건넌방을 난방하는 아궁이는 방 뒤쪽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대개의 집들이 죽담(흙담)으로 쌓여 있고 높이가 낮으며 방문을 작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제한된 토지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
즉 주거지의 밀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집 안에 텃밭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성벽을 민가의 담으로 활용해 공간의 낭비를 없앴으며 길을 향한 집들은 건물 밖으로 담을 두르지 않고
건물 외벽이 담을 겸하도록 해 외벽과 담 사이에 생기는 공간을 없앴다
따라서 낙안읍성에서는 돌로 쌓은 담과 흙으로 쌓은 건물 외벽이 맞대어 이어지며 두 종류의 거친 재질감이 어우러진다
마당도 밀도를 높이기 위해 독특하게 만들었다
보통 민가에서는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구분되며 안채와 부속채로 둘러싸인 안마당은 생활 공간으로
바깥채 혹은 사랑채 바깥쪽에 조성되는 바깥마당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낙안읍성에서는 바깥마당을 따로 두지 않고 넓은 안마당의 경사를 이용해 단의 차이로 구분한다
이처럼 밀도를 높여 공간을 구성한 이유는 낙안읍성이 다른 전통 마을과는 달리 읍성 도시이기 때문이다
낙안읍성은 다른 전통 마을보다 정겹게 느껴지는데
건축 소재를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해 집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목조 가옥에서는 기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조로 지은 전통 한옥은 물기에 약하므로 기단을 통해
비가 왔을 때 물에 잠기거나 집이 습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햇빛을 많이 받도록 한다
낙안읍성에 있는 집들의 기단은 잘 가공된 장대석을 높이 쌓는 사대부 기와집과 다르게
둥글넓적한 막돌을 주워 한 줄 내지 많게는 서너 줄 쌓아 올린 것이 전부다
둥글둥글한 모양이 우리 서민들의 심성을 나타내는 것 같아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낙안읍성 안의 건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모두 9채다
참고문헌
송갑득, 『낙안읍성』(순천시, 2012)
한필원, 『한국의 전통 마을을 찾아서』(휴머니스트, 2011)
서정호, 『한옥의 미』(경인문화사, 2010)
신광철, 『한옥 마을』(한문화사, 2010)
이희근, 『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다우, 2001)
백남천, 『대한민국 베스트 여행지』(나무생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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