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 함민복

하농17 2012. 2. 22. 10:37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는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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