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내 아들의 입소식..

하농17 2016. 6. 14. 10:37






차에서 내려서 돌아본 첫 풍경

나침판처럼

끝없이 이어질거 같은 길

어쩌면 길은 우리들의 삶 여정은 아닐까





새벽에 김밥 계란을 삶고

과일 땅콩 호두등의 간식꺼리를 준비하고

차를 타고 오면서 내내 먹었지만


2시 30분까지 부대에 들어가야 하는 약속때문에

무작정 허겁지겁 의무적으로 찾아 들어간 음식점


몇칠 전만해도 뉴스에서 논산 훈련소  숙박시설과

음식점에 관한 소식을 들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늘 올것도 아니고 해서

주인여자가 시키는 대로

소고기 불고기를 시켰는데

(부대에 들어가면 영원히 못 먹을거처럼

집에서나 외식을 할때면 고기를 주로 사 먹였더랬는데.. )


아들은 오면서 김밥밖에 먹지 않았는데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며 점심으로 시킨 고기들을 몇점 집지 않는다


남편은 자기 마음이 이상타며 

오면서 계속 먹어대더니

소불고기도 입에 맞는 건지 잘 먹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누구라도 잘 먹어서






시간이 좀 남아 있는거 같아

부대주위를 둘러봤다


아들은 요즈음 내내 긴장을 하고 있어 서인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지만

볼일은 못 보는거 같았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넉넉하게 일을 보라고 했건만 그냥 나온다..)






김세레나 민요가수라고 알고 있는데

내가 사진을 찍어오면서

집에 와서야 이 글들을 읽어간거 같다


또 다른 곳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였던거 같다

아들은 엄마가 블로그를 하는지 아니까

누나를 그리워하듯

자기도 그리워하는 글들을 엄마가 쓰기를 바랄거 같아서

앞으로 한달간 아들이 머무를 이 도시

논산 훈련소의 풍경들을 찍었다








김세레나는 1947년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나

1965년 동아방송 '가요백일장'으로 데뷔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꽃타령, 까투리사냥, 성주풀이, 창부타령 등

1,000여곡 100여장의 앨범을 취입


노래비는 그녀의 노래 인생을 함축적으로 상징해

 밀알위에 오선지를 그려 넣고

최대 히트곡 갑순이와 갑돌이를 새겨 넣어 의미를 더한다


아마 그녀의 국군장병을 위한 위문공연과

월남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공연일화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육군훈련소 입소대앞에 세워진 노래비는

김세레나가 군인을 사랑하는데 그 의미를 더한단다





이 글들은 다 읽고 왔는데

지금도 마음이 아파지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

전쟁의 일화가

모든 아들들의 사연들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즐겨찾기 해 놓은 논산 훈련소 홈페이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올려진 23연대 아들 사진을 쳐다봤으며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놓으며

800자 내의 제한된 편지를 하루에 두통 세통의 편지를 썼으며

전달이라는 수신의 글들이 뜨며 하루를 정리하듯 마감했으며

 올려진 부대원들의 소식들을 보면서 다른 엄마들의 편지 제목들을 보며

 동병상련으로 부모라는 이름들로 통하는게 있었는지 절로 눈물이 나왔으며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치고 나오고는 했다


나중 분대장이 된 내 아들이 말하길

엄마가 보낸 편지들을 훈련병들과 함께 돌려봤단다

엄마~ 애들이 자기 마음들이 다 따뜻해지는거 같더란다

편지 받는 내내 참 좋았단다


다른 아들들이 편지를 받을때

하루라도 편지를 못 받으면 내 아들이 허전해질까봐

그날들의 일상

오래전 아들이 커 오면서 느껴왔던 감정들을

적어 보내면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소중함을 더 알아갔던거 같다

.

.

.


1951년 전쟁 중 미국과 한국 정부가 지금의 위치에 훈련소를 세웠으며

 이곳 지역은 구자곡(九子谷)으로 당시 9개의 도에서 아들들이 모인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조선시대 문장가이자 학자인 이서구 선생이 이곳을 지나며 풍수적으로 명당인 ‘금계포란’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지형을 가졌다고 이야기 한 곳에 육군훈련소가 입소되었다
과거의 풍수학적인 관점과 과학적인 측면을 토대로 하는 현재의 군사 전술학적 지형으로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이곳 안녕고개를 넘어 남원으로 내려갔으며
전국의 아들들이 입소와 면회, 만남과 전역의 이별을 나눈다는 점에서
안녕고개라는 명칭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논산훈련소는 군인들의 심장으로 64년 동안 여기까지 달려왔다
(시니어 리포터 신동준)





훈련소 들어 가기 전이다

꽃들이 저마다 피어나 제 색과 에쁨을 뽐내는

봄이라는 이 계절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4월에

우리 아들이 의무경찰로 논산훈련소를 찾았다


큰복이라며 감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이곳 연무대에서 한참이나 근무했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나중 논산 잘 있더냐고 엄마가 물어 온다..)






아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상상태인듯 하다

걷는 발걸음부터

표정이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는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걷는듯 했지만

내 마음이 이런데









우리가 되게 일찍 온거 같았는데

모두가 다 일찍 온거 같다






나중 한달 뒤 수료식에 머물곳이라 생각되어져 찍었는데

지금보니 길마다 이어지던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우리들의 아들

그의 부모들로 이어지던 군인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근데 참 이상하지

그냥 무심코 보아오던 군인들이었는데

내 아들이 이 훈련소에 발을 디디고 머물곳이라 그런지

모두가 반갑고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들이 정겨움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그 언젠가 오고 갔을

어딘가에 발자취 하나라도 남아있을

내 아버지의 자욱들이

흔적들이 내 온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아.. 이런 공연도 하나 싶었다

지금 막 훈련병이 될 아들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으며

지금 근무하던 아들들이 단체춤과 함께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혹시 맞으면 어떡하나

힘들면 어떡하나하는 걱정과 우려가 조금은 가셔지는듯 했다


아들은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나는 그들 부자의 사진들을 찍어 갔다


나중 나는 아빠의 자리와 엄마의 품속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틀린걸 알아갔다


내편지와 남편의 편지내용이 틀린걸

남편의 글들에 의해서도 알아갔다


남편은 내가 알지못하는 훈련소의 생활과

권총 쏘는거 도보 화생방 훈련등

전우애에 대해 글을 썼으며


내가 잘 모르는 용어들로

아들을 응원했으며

잘 버티어줄것을 당부했다

(남편은 전산통계학과라 서울에서 암호해독인가하는 곳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나중 내가 얼마나 군생활에 무지한지 글로 적어 내려갈날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역시 군인의 딸의 피가 흐르는거 같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향한곳


우리의 전쟁의 역사

아픈 상흔들이 글로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다








나는 군데 군데

이곳 저곳을 돌면서

눈물을 훔치고

목을 넘어오는 울림을 가다듬고 있었나 보다


이 한 목숨

휴전상태이지만

지구상에서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는 유일한 나라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되지만

그래도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수 없는 나라






이때만 해도 그나마 괜찮은거 같았다

계단을 내려와서

각자의 자리를 찾듯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아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줄을 서고 있었다






계단까지 부모와 동행했었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혹은 서서

아들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애국가 제창이 있었고

선열들의 묵념이 이어졌으며

군인들의 연설이 이어졌다.

.

.

.


참으로 희안한거는

아들들이 부모의 품에서 몇 발자국 멀어져갔는데


줄을 서면서 앞으로 뒤로 하는 구령에

경례하는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으며

훈련에 임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거 같았다


그래

이제 정말 남자가 되어가고 있구나

진정 어른이 되어가는구나하는 생각에

기쁨도 잠시 감회인지 모를 눈물이 또 흘러 나왔다






부산은 일반병들은 거의가

경기도나 강원도로 훈련이 떨어지는거 같았다

요즈음은 훈련도 자대 배치될곳에서 받고 막바로 머문단다

아들은 처음 훈련통지서가 날아올때 강원도로 통보되어 왔다

.

.

.


일반병이 아니라서 감사했고

(의무경찰과 일반병은 훈련 기간과 강도가 조금은 틀린거 같았다..)

강원도에 떨어지지 않을거 같아서 더 감사했고

(경찰은 거의가 사는 연고지에 복무한다고 알았고

내 아들은 지금 내가 사는 관할에 배치되었다..)

그래서 절대로 울지 않을려고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논산으로 향했는데


아들들이 줄을 서서 본관 훈련소로 향해 가면서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행렬앞에서 손을 흔들며 지나 가는데

아.. 그때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아들의 마음이 약해질까봐 그렇게 참고 참았는데

(나중 내 아들이 내가 우는걸 봤단다

근데 지 마음도 되게..)


집에 오기 전 여자화장실을 가면서

나만 그런줄 았았는데

엄마들의 눈이 거의가 다 빨개져 있었다






올라올때는 세명이 올라왔는데

아들을 낯선 도시에 떨어뜨리고 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한의 남자라면 누구나 치루어야 할

어른이 되기 전에 맞이해야 할 관문인거처럼

군이라는 성인식의 통과의례처럼

진정 남자가 되기 위한 발을 내 디디고 있다


4주간의 훈련

건강하게 무사히 지낼수 있도록

마음속 염원하고 빌고 또 빌었다


아들 사랑해

엄마가 우리 아들 많이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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