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는 딸아이랑 김포공항으로 가지 못했다
행복한 기분만 가득가지면서
절대로 눈물흘리지 않고 보내려 했었는데
그게 생각만으로 되는게 아니었다
거의 일년을 떨어져 있는다고 생각되어지니
그것도 타국에서
아는 이 하나도 없는 곳에 혼자 보낸다고 생각을 하니
나도 몰래 불안해 지면서 훌쩍여도 졌다
떠나보낸다는거
아마 시집을 보낼때도 이 맘 같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아버지가 나를 보내고 자주 울먹이며 전화가 왔으니
그때 왜 좀 더 다정히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딸을 키우면서 더 생겨가는듯 하다
한달 내내 준비를 하면서 마음에 몸에 이상이 왔다
아이와 남편을 보내면서
아이는 집을 나서기 전 나를 한참이나 껴안고 눈물을 흘렸고
나는 건강하게 잘 갔다 오라는 말을 수십번씩 쇠뇌하듯 다짐을 시켰다
(2015년 01월 01일 08시 10분 김포공항인가 보다.. )
거실에서 밤새 끙끙 앓으며
실시간으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아침 8시 45분 김포공항
방금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남편전화를 받고 몇분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왜 하며 일순간 가슴이 서늘해져 왔는데
수화기 저쪽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
누구지
여보세요 하는데
엄마하는 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나는 딸아이가 울면 이상하게 같이 울게 된다
한참을 서로 그렇게 말문을 잇지 못했다
잘 갔다오라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여기에서 펼칠수 없는게 있었다면
그곳에서라도 날개를 달아 보라고
집에만 있던 성격 좀 고쳐보라고
찬구들 많이 사겨 오라고
나는 흔히 부모들이 할수 있는 당부를 다 했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수십번을 해도 모자라듯 말을 하고 말을 했다
(08시 17분)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되었냐고 기분 이상하게 들어갔느냐고
울면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남편은 허 허 하며
자기 보고 손 흔들며 웃으면서 들어가면서
아빠 내가 올때까지 담배 꼭 끊으라며
씩씩하게 안녕 안녕 하며 들어갔다고 했다
다시 아이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하면서
나는 한참이나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08시 50분)
가지 말라고 한번쯤은 말해 볼것을
여기서 공부하면 어떻겠냐고
물어 볼것을 하는 후회가 일순간 생겨났다
외국에 가고 싶다는 말에
다른 곳에도 가고 싶다는 말에
가고 싶으면 가 하는 내 대답에
딸아이는 그 다음날부터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캐나다에 먼저 간 딸아이 친구가 선택을 했던
각 나라에 지사를 두고 있다는 서면에 있는 유학원에 같이 가면서
여기 저기를 둘러보지 않고 그 유학원에서 선택을 했다
한국인들의 피해 소식을 자주 접했던 필리핀은 너무 위험하게 생각되어졌고
요즈음 들어 한국유학생들의 위험 정도와
인종차별에 대한 소식을 뉴스에서 자주 봐서 그런지
호주도 내게는 전혀 다가 서지 않았고
유학원 선생님 또한 미국과 캐나다를 권해 왔다
미국은 큰 오빠 두 딸들이 뉴욕과 시카고에서 각각 1년씩 연수를 받았고
한국에서 토익 최고점으로 미국에 가서 인지
큰 딸아이는 LG전자 영어 동시 통역사로 취직을 했고
작은 딸은 외국기업에 취직을 했다
근데도 나는 너무 넓은 미국은 그리 내키지 않았고
특히 홈스테이에서 밥을 해 주지 않는다는 말에 마음의 문을 닫았던거 같다
(08시 55분)
선생님은 캐나다 벤큐버와 토론토 두곳을 제시했다
부산과 기후와 조건이 비슷하다는 벤쿠버
경기도와 서울과 같은 입지 조건과 눈이 많은 토론토중
부산에서는 살아 봤으니
대 도시인 토론토는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딸아이도 나도 토론토로 결정을 내렸다
(09시39분)
제일먼저 여권을 만들었고
비자 신청을 했고
항공권
건강검진이
의료실비가 준비되어졌다
아이가 가지고 싶다는 천송이 삼성 노트북과
소지섭 카메라라고 나는 알고 있는데
롯데에서 산 무슨 전자 시계
이번에는 모두 세트로 하얀색을 가지고 싶어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라는 말에
완전 무장되는 두꺼운 오리털 방한 잠바와 방한부츠 내복 양말
여름이 거의 봄 가을같다는 말에
얇지만 따뜻한 옷을 고르고 사면서
거의 한달을 보냈던거 같다
딸아이는 다시 못보듯 집앞까지 찾아오는 친구들을 만났고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호기심에 들떠 하는거 같았지만
나는 하루 하루가 다가 올수록 마음이 가라 앉아 가는거 같았다
화물용 가방 두개 각각 23키로
기내용 10키로 의 무게를 맞추어 가면서
어느날 시아버지가 우리가 가고 나면
가지고 가야 될 물건중에 무엇이 빠졌더라며
무엇이던 주고 싶어 하는 아쉬움에 전화를 걸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도 알거 같았다
나중 아이를 보내고 나서
챙겨주지 못해 생겨지는 마음 쓰임에
어쩌면 내게 생겨날수 있는 아픔을 무마하고자 하는
내 위로와 위안이 더 컸었는지도 모르겠다
(10시 08분)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홈 스테이에 들어간다고 해도
비상 의약품들 샴퓨 린스 비누 치약 치솔 수건 생리대
빨래 하는 세제만 배고는 다 가방에 넣었다
올때 짐이 많아질 경우를 대비해서
수건과 비누등 일반적인것들은 누구를 주던지 버리고 오라고 당부도 했다
압축팩 일반 비닐팩에 옷들을 화장품을 넣으면서
이렇게 접고 넣으라고 보여주면서
비닐과 고무줄까지 챙겨 넣었다
옆에 매는 가방에는 카메라와 노트북을 넣었고
화물칸에 들어가는 가방은 집어 던질수도 있다는 말에
뽁뽁이와 수건에 돌돌 말아야 했다
가방은 알차게 여며졌고
후회없이 아이가 가지고 싶은걸 사주면서도
몇번은 울먹여 졌고 애써서 웃으려 헤헤 거렸다
딸아이는 놀러 가는 거랑 같은거니까
괜찮다는 말에 웃기도 했지만
보내는 부모 마음은 그런게 아니었다
아이는 지가 올때까지 에너지 많이 비축해 놓으라며
나중 같이 놀자며 떠났는데..
(1월 1일 10시 09분)
내딸
내 소중한 이쁜 딸
니가 나서 자란 이곳과는
또 다른 세상에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좀은 크고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니가 뜻하고 생각했던거
많이 이루고 왔으면 좋겠다
엄마는 두 손 모으고 기도하고 있을께
많이 많이 사랑해 내 딸
건강해야 된다..!
(1월 1일 09시 17분)
기내식인거 같다
괜찮아 보인다 그치
우리 딸 어디에서고 잘 먹을거야
반찬투정하는 아이가 아니니 말이다
(1월 1일 13시 18분)
여기가 도쿄 공항인가..?
(13시 19분)
(13시 30분)
음료수 보고 한참 웃었다
우리랑 같네
똑 같다
현이 여자 친구가 부쳐줬던 과자들도 거의 비슷하고 같던데 말이다
(2015년 1월 1일 16시 23분)
참.. 롯데에서 현이도 니 오리털 잠바랑 같은거
유행이라며 빨간색으로 샀다
(피부가 워낙 희니까 잘 어울리더라)
그래도 아이보리색이 자기한테 가장 잘 매치가 된다면서
니 오면 저 잠바도 현이가 입을려고 하더라
.
.
.
하루 해가 벌써 지고 있구나
그치..?
(17시 06분)
(1월 1일 17시 34분)
머스마가 연말에 일본에 갔다오면서
엔화가 좀 있었는데
혹시 모르니 무어라도 사먹어라고 1000엔 두장을 들고 갔는데
한국돈으로 8000원이라며
엄마가 끓여주는 우동보다 한참 모자란다는 글을 받았는데
다른걸 사먹지 그랬냐
현이는 지 친구를 도쿄공항으로 나오게 할까며
맛집을 가르켜도 준다고 했는데
니가 번거롭다고 거절을 해서 그렇지
그러고 보면 길을 모르니 공항을 나가기도 그랬을테고
말이 안 통하니 주문 하기는 더 그랬을테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안 그런 사람이 더 많겠지만
웬지 겁이 나고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마음 졸이는 나라인거 같다
(반한 감정의 사람들이 데모를 하는걸 하도 많이 봐서일까..?)
3박 4일 머스마를 보내고도 그리 되었는데
그래도 머스마는 일본인 친구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지만
어떻게 기다릴래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1월 2일 00시 05분)
머리카락은 떡 져 있고
눈이 되게 큰데
왜 이리 퉁퉁 부어 있는거 같지
(1월 2일 00시 38분)
수고했다
도쿄에서 거의 열 몇시간을 기다린거 같으니
니가 기다린 시간만큼 엄마도 마음 졸였구나
이제 에어 캐나다
출발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