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에서 이기대까지.. )
바다
넓이 끝없이 까만
깊이 한없이 아득한
바다 또 바다
저 바다 너머는 또 무엇이 있나
물결
앞에도 앞에도 푸른 푸른
옆에도 옆에도 하얀 하얀
물결 또 물결
저 물결 뒤에는 또 무엇이 있나
소리
하늘 울어 천둥
땅 울어 지둥
흔들고 뒤흔드는
저 소리는 누가 흔드는 소리인가
바다 아닌 바다
물결 아닌 물결
바람 아닌 바람
소리 아닌 소리
거기가 가고파서 그리워서
울부르느냐
흔드느냐
들이치느냐
떠서 도느냐
이소리 이 바람 이 물결 이 바다
논다
늠실 늠실
우으로 우으로 늠씰 늠씰
아래로 아래로 흠씰 흠씰
그저 늠실거려 논다
노했다
밀려온다 밀려온다 온다 온다
철석 철서덕 쾅
나간다 나간다 간다 간다
한숨 내쉤다 부스스스 거품 거품
싸운다 싸운다
또 들어온다
또 나간다
들어오다 나가다 나가다 들어오다
와아 솨아 출렁 철렁
밤낮으로 쉴새없이 우는 바다
밤낮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흔드는 바다
밤과 낮으로 눈코 뜰 겨를 없이 들이치는 물결
밤낮을 아우성을 치는 물결
너는 무엇이 분하니 무엇이 노여우니
이쪽엔 일고 꺼지는 有의 물결
아득 아득한 수평선
저쪽엔 죽은 듯 막막한 無의 모래밭
뽀얀 뽀얀 地平線
수평선 지평선을 내다보는 그 가운데 天平線
그 서품에
그 바다와 모래밭 만나는 사이
그 有와 그 無 갈라지는 짬
그 싸움의 오고 가는 틈
그 늘 싸우건만 이김도 짐도 없는 선 위에
늘 들이치건만
더 얻음도 없는 선
늘 흘러 나건만
빠져남도 없는 선
늘 늘 변하면서 변함 없는 선 아닌 선
얼마나 많은 물결 거기서 부서진
얼마나 많은 거품 거기서 꺼진
얼마나 많은 모래 거기서 묻힌
얼마나 많은 발자국 났다가 사라진
얼마나 많은 배 거기서 떠난
수없이 많은 그림 여기서 그려진
수없이 많은 음악 여기서 울린
수없이 많은 진주 여기서 닦여난
수없이 많은 얼굴 잃었다 만난
수없이 많은 배 여기 와 닿던
그 선 위에
그 서품에
한 형상 섰네
어부 아닌 어부
호올로 서 있네
발 밑에 설레는 물결
삼키려 함 모르는 듯
머리 위 휘도는 모래바람
덮치려 함 모르는 듯
바위처럼 서는 그 사람
바닷바람에 찢기고 익히운
그 살 그 힘줄
소금 모래에 타고 깎이운
그 이마 그 뺨
싸움의 기록을 그린 그 얼굴
익어 떨어지는 밤알인 듯
붉고 검건만
저녁 영광 속에 빛나
황금옷 입은 천사인 듯
화평과 엄숙의 빛 띠어 있고
바람결에 나부끼는
굽실굽실한 머리카락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자유의 기상 떠도는 속에
한 줄기 슬픔 숨음 드러냈네
숲 속에 미끼 얻어본
독수리 눈인 듯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그 눈
또 갈라지는 애인들의 그것같이
애탐을 호소하는 그 눈
아득한 바다 끝의 한 점
깜짝 않고 바라고 바라다가
눈물 어릴 때마다
두툴한 그 주먹 들어
닦으며 바라보았네
바라다 바라다 못해
소식 없어
두 손 말아 나발 만들어
거친 수염 헤치고 입에 댄 후
소리쳐 부른다
발꿈치 까꾸러지게 괴어
발끝으로 서고
목 빠지도록 내빼어
수평선 너머 건너다보며
어어이 어어이
외치고 외치건만
하늘 땅 뒤흔드는 아우성 속에
그 소리가 무어냐
구름 물 맞닿는 멀고 먼 데
그 소리가 무어냐
외친 그 소리
한 걸음을 못 나가
발 앞의 사나운 물결
거품 문 입에
다 삼켜버린 듯컨만
안타까운 가슴 앞에
영원인들 그 무어냐
무한인들 그 무어냐
굽힐 줄 모르는 맘
부르고 또 불렀다
목에 핏대 팔뚝같이 돋고
배는 대장장이의 가죽 풍군 듯
뱃겨 쳐 불며 불며
열 두 고비 마지막 끝에서 울려대는 소리
어어이 어어이
천지는 무정하건만
그 강剛엔 못 견디었나
천지 유정해 그 성誠에 감동돼
한 때를 빌렸나
요란하던 세계에 이는 또 무슨 일인가
바람 쉬고
물결 자고
소리 죽고
바다 잔잔해
천지는 잠쪽 고요해졌네
이 일순一瞬
이 고요한 일순
이 눅어진 일순
하늘 땅 사라져간 곳을 모르고
有無는 녹아들어 한 빛뿐이더라
찰나
모든 힘이 치륜齒輪이 멎는 시간
우주가 숨을 쉬는 시간
들어간 숨이 아직 나오기 전
나는 숨 채 들어가기 전
호呼도 아닌
흡吸도 아닌
생生도 아닌
사死도 아닌
순간에도 차지 못할 찰나
이 일一찰나
모든 동정 다 사라져 없고
모든 적의敵意도 다 물러가 없고
주관 객관 싸움도 없고
무한을 단번에 만지는 찰나
오직 하나 때만
오직 하나 숨만
오직 하나 삶만
오직 하나 뜻만
오직 하나 하나만
하나만인 그 찰나에
모든 것이 다 죽은 시간
부르다 부르다 끊어진
바드득 쥐어짜 부른 끊어진 소리만
거칠 것이 없이 뚫고 달았다
물 위로
바람 위로
구름을 뚫고
하늘을 뚫고
저 건너로 저 밖으로
들렸나 아니 들렸나
어디로 갔나
하늘 땅은 알 리도 없고
부른 제 맘만이
안다면 오직 홀로 알 소식
부르기를 마치고
그 바다같이 잠깐 잠잠한 후
나발했던 두 손 갈라
오그려 좌우 두 귀에 대고
실눈을 감으며 어부는 선다
바람 또 아우성친다
물결 또 들였다 친다
소리 또 뒤흔든다
바다 또 늠실거린다
억만 년 전부터 하는 그 장단대로
하건만 바람소리 모르는 듯
물결 뛰놈 아니 보는 듯
모래밭의 회리바람 아니 무서운 듯
수평선 넘어오는 소식 오직 들으려
어부는 숨을 죽이고 등걸처럼 선다
소식 갔는지
소식 왔는지
알 길도 없고
어디로선지 모르게 날아온 백조 한 마리
안기듯이 발 앞에 풍덩 떨어져 앉는다
끝없는 바다 끝없는 모래밭
그칠 줄 모르는 떨리는 교향악
수평선 지평선 넘겨다보며
그 서품에 천평선天平線 기대고 서서
어부는 영원히 영원을 내다보더라..
(1953년 시집 / 수평선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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