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하농17 2012. 10. 27. 10:32

 

                                                                        사진 / 우두망찰님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나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세상 건너편에 서 있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에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를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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