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시가 있는 아침] 소금창고

하농17 2011. 5. 11. 08:49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해 지는 서쪽 바다 멀리 끝 간 데 모를
하얀 소금밭에 기우는 까만 소금창고 하나


  내가 담으려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속에 담겨 묵어 있는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

그런 풍경을 배경으로 고적해져 있는 한 사람의 추억을 듣는다


요즘 세상 마흔 살이면 청년일진대

이 마흔 살 주인공은 천성이 늙수그레한지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주며

지금은 없어진 소금창고가 있던 곳의 헐한 옛 시간을 추억한다

 

시린 옛날 노래는 사라져가는 게 아니라
지금도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라고

목메며 덧없이 가고 오는 흰구름 속

어느 구름의 시간에 자기를 걸었는가 묻고 싶은

한 방울 눈물 떨어지는 마흔 살..

  

 이진명시인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조각의 생각   (0) 2011.06.13
한 남자를 잊는다는건 / 최영미  (0) 2011.05.31
당신은 나의 오르가즘  (0) 2011.05.04
이외수 일러스트 명상글 모음   (0) 2011.04.25
한잎의 여자..  (0) 201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