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돈호 (1959년 3월3일)
경상북도 경주출생
서양화가
들꽃과 길의 화가
혼자서는 못 찾던 답이 함께한다고 해서 찾아질 리 없다는
때 이른 현명함은 이미 충분했다
어떤 답은 어려워서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사랑의 위대함이 아니라 낱낱이 목격되는 사랑의 평범함을사랑한다
그런다고 해서 사는 게 아주 나빠지지는 않았다
꿈이 없는 사람도 너무 행복한 사람도 무척 고단한 사람도
세 살 아이와 팔십 대 노인도
이도 저도 아닌 사람도 다들 어떻게든 살아간다
뭐하나 쉬운 일 없어도
때로 추억은 성가신 것이지만
내 안에 사는 것들이 다 사라진다면
그 쓸쓸함의 깊이가 얼마일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 나는 노오란 꽃을 샀다
너 모르게
세상을 헤아리는 속셈과 지혜를 버린지 오래되었다
내 눈에는 그저 다른 것만 보였다
나 하나쯤 다르게 산다고
이 튼실한 세상이 탈나지는 않았다
아무리 탈탈 털어 싸매주어도
시간이 흔쾌히 내 잘못 전부를 과거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금세 부끄러움이 여기저기서 청구서를 내밀 뿐
한 사람이 우주라면
그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우주를 사랑하는 일이 되는가
아오마메에게는 덴고가
고흐에게는 테오가
마르크스에게는 엥겔스가 있었다
그런 사람 만나기 어렵지 보다는
먼저 사랑하고 볼 일이다
나머지는 그 뒤에 생각하자
2017년 7월 24일
다시 또 대단하지 않은 날
그리 대단하지 않은 당신을 생각한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물기를 거둔 하늘이
정성 들여 화장한 애인처럼 좀 달라 뵌다
내 이쁜 애인은 또 뭔 일로 저리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환한 여름 눈부시게 반짝인
초록 이파리 같은 몸매를 드러내며 정다이 다가오는지
그래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당신 있는 이승이 얼마나 좋은 거냐며
나는 공연히 오늘 볕 좋아 바람 좋아 둘이 살기 딱 좋아 추파 던지고
애인은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계속 생글댔다
나는 애인 등뒤로 다가가 살포시 감싸 안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폭염과 비바람을 이겨내고 가을 초입에 선 나무가
아직 싱싱한 이파리를 들고 있어도
8월과는 다르게 뭔가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말이 없어도 가을 언저리에 들어선 나무의 앞뒤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고
맑은 하늘에 가만가만 흐르는 우주의 실핏줄과
전후좌우가 딱딱 들어맞는 정연한 체계
속내 등도 이쯤에선 훤히 보인다
사랑은 덜컥 믿거나 과하게 긍정하거나 기대하거나
의지하거나 자학하거나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고
사랑은 맑은 날 잠깐 내리다 거짓말처럼 멈추는 여우비나
봄날 잠시 흩날리다 그치는 눈발 같은 것이라고
나는 단골카페 창가서 다리 꼬고 앉아 커피 홀짝이며 구시렁대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멋진 여인과 연애나 하며 한세월 탕진하는 일이 죄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신의 섭리와 부모의 기대를 배반하고
국가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대역죄인의 길을 가겠네
살다 보니 한 달 동안 한 번도 안 들어간 방이 있더라
기억을 잃은 것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드나든 방도 있고
800평 땅에 지을 건물 설계 전에
나에게 필요한 공간의 넓이가 얼마일까를 곰곰 생각했다
건축도 사람의 인연처럼 유지 보수 책임을 떠안는 일이라
게으른 나는 연면적 15평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니까 800평 땅에 고작 15평 오두막을 올리는 셈인데
구조재 마감재 등의 디테일에 신경 쓰느라
건축비가 45평 일반주택 신축비와 맞먹는다
수납과 음식 조리 냄새는 오두막과 분리한 다른 집에서 해결하고
내가 머물 공간에는 볕 좋은 변두리의 고요와
늦여름 오후에 살살 부는 바람 비
하늘을 바라볼 천창 네 개 침대 긴 테이블과 의자 세 개
작은 욕실과 빵 냄새와 커피향 그리고 툇마루에서 게으를 고양이와
사시사철 주야장천 멀쩡하게 잘 나오는 풍경과 TV
00당 00헌같은 집 이름 정도면 족하다
반백년을 산 내가 요즘 가끔 머무는 추억의 장소도 사실 크거나 넓지 않다
월든 호숫가 숲속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살았던
소로우는 명문 하버드 출신에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쓴 월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서
하나는 우정을 위해서
마지막 하나는 사교를 위해서였다
통속의 세상에도 서로에게 돈 될 일 없는 애인을
공손히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시끌벅적한 뜨내기들과는 다르게
몸짓 다소곳한 그런 애인이 물어물어 찾아와
머물 날 기다리며 나는 쌍둥이 같은 오두막을 하나 더 지어야지
글/****님
.
.
.
책을 내셨다면서 지인들에게 선물한다는
그즈음 그런 날
너 모르게 노오란 꽃을 샀다는 글에
이 단순한 몆 줄의 글에 멍청해지는 마음 있어
무턱대고 가져왔던 글입니다
그때가 언제인데 하며 올려봅니다
최근 글을 읽다 ㅎㅎ 웃음 띄게 해
어쩌면 다른 글들도 연상이 되어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허홍구의 아재매는 할매되고
류인서의 그 남자의 방 또한
빌미로 잊혔던 문학 뒤쪽 페이지로 들어가
몇 편의 글들을 다시금 읽어보았습니다
기억소환과 함께
그럽니다
글들을 읽어 내리면서
생각 또한 많아져 혼잣말을 한참 하고는
지면으로 옮기고자 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날 때 생깁니다
자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의 글에도
우리의 두뇌는 다양한 믿음을 양산해 왔지만
항상 진실과 일치하는 쪽으로 진화하지는 않으며
생존에 유리한 믿음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는 글들에 한참 머물면서
기억도 추억도 생존본능도 생각들의 해석도 행동도
모두가 각자가 가질 수 있는 합리화와 편리에 부합되어
삶의 진실이라는 맥락에 껴 맞추어 진화하며
간단히 빠르게 포장되어 타협해 가며
자기화에 의해 만들어져 가는 거는 아닌지
무어라 뭐라 한참 생각하다 나오기는 하는데
가을이라서 계절이 가져다주는 나락에
한껏 젖어 들고 있는 건지
한자리에 하나의 글들에
오랫동안 파묻혀 생각이 많아지는 듯은 한데
글로서도 말이 하기 힘들어질 때 생겨나니
이러다가 손짓발짓 또한 하는 날 생기지나 않을는지
이 글 또한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제가 저한테 하는 말인 거 같은데
한낮의 뜨거운 볕들에도
그늘 향해 불어 들던 심술궂고 맘 좋은 선선한 바람에도
이제 가을일 테지요
아니 겨울의 초입일까요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면서 두런거리는 느린 걸음으로
블루투스로 들려오는 음악 들으며
세상 걸음 하는 지금이 행복인 듯합니다
11월 17일
온산과 거리가 붉고 노오란 빛으로
물들어 갈 때 결혼을 했는데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꽃보다 이뻤던 우리 엄마가
내 곁에서 떠나버린 6월 17일을
17일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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