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리움(情).. 나를 키워준 엄마의 품속
작업실 앞에 제법 큰 느티나무가 있다
늘 내 곁에 있는 친구 같은 나무다
전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어느새 물이 올랐다
철 따라 변하는 나무를 보니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이 산속으로 들어왔다
수만리를 돌아 다시 고향으로 오는 남대천의 연어처럼
어릴 때 뛰놀던 들판 물장구치던 개울은 옛 모습을 잃었지만
산등성이 이름 모를 들꽃은 여전히 정겹다
순수함 소박함 조용함 느림의 단어들은 시간의 속도에 묻혀 버렸다
이곳에서 다시 그들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시끄러운 세월에 조용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다가 설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나의 그림이 잠시나마
고향을 생각하며 옛 추억에 잠기게 해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옛날 초등학교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어 설레는 손으로 펼치는 국어교과서 속에는
봄시를 따라나온 진달래꽃 복사꽃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콘크리트벽 같은 세상을 허덕이며 사는 동안
그 예쁜 꽃들은 어느새 죄다 꿈속으로만 숨어버렸다
그랬는데 오늘
이혜민 작가의 그림 속에서
꿈길에서만 피던 진달래꽃 복사꽃을 만난다
그 뿐이랴 토닥토닥
눈뜬 강아지 같은 내 새끼야 하시던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목소리도 듣는다
꽃그늘 아래에서 반가워라
참말로 눈뜬 강아지 같은 아이들이
과꽃처럼 서서 햇볕 쬐는 양지 바른 흙벽
살짝살짝 깨알처럼 웃고 있는 낙서들을 찾아낼 때면
그저 다 보고파서 젖어들던 눈가에 대책 없는 웃음마저 번지는데
아..
참말로 뜬금 맞다
봄날 그림앞에서 / 송내경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엄마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이혜민
1954년생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산업미술과 시각디자인 전공
젊은 시절 디자이너로서 성공하지만 바쁜 삶 속에서 건강을 잃은 후 결심
욕심이 병을 만들었다며 돈은 못 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며 40대에 화가가 됨
그는 가장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
소박한 색감과 정교한 필치 특유의 마띠에르 기법으로 표현한 고향의 풍경들이
마음속 깊이 그리움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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