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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은 냄새부터가 다릅니다

하농17 2013. 6. 25. 10:32

 

 

서울] 오래된 책은 냄새부터가 다릅니다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덕용(태경표구사 대표·52세) 씨는

인사동에서 고서책을 복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요즘은 대량으로 출판된 책들을 서점에서 손쉽고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떠나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희소가치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만들어진 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더 책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는 고서는 책이 만들어진 시대와 내용에 따라 문화재급으로

인정받고 있는 책들도 있고 꼭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가보로 대대손손 소중히 이어져 내려오는 책들도 많다

 

 

 

물에 젖은 책을 복원하기위해 작업을 준비중인 이덕용씨.
물에 젖은 책을 복원하기 위해 작업을 준비중인 이덕용 씨

 

 

하지만 종이로 만들어진 특성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책에 곰팡이가 피는 등 훼손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마침 물에 젖은 고서를 복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씨가 대표로 있는 인사동의 태경표구사를 찾았다
 
고서를 복원하는 작업은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정성과 노력을 요구하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먼저 물에 젖은 책을 그대로 말리면 누렇게 색상이 변하기 때문에

일정시간 증류수에 담궈 물기를 뺀 다음 책 복원에 쓰일 한지에 물을 뿌리고 곱게 손질한다

이어 복원할 고서 한 장을 조심스레 떼어 준비된 한지 위에 살며시 얹는다

그 위에 다시 물을 뿌리고 솔질을 하고 난 뒤 핀센으로 정리를 한다

그 다음 또 한 장의 한지에 물풀을 바르고 뒤집어서 처음 바른 한지를 떼어내고

베니어판에 붙인 다음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배접한다고 한다 
 

 

 

 

물을 뿌리고 솔질을 하고, 물풀을 바르고 솔질을 하는 복원과정을

물을 뿌리고 솔질을 하고 물풀을 바르고 솔질을 하는 복원과정을 배접한다고 한다

 

 

뜯어낸 고서의 한 장 한 장을 배접하고 나면 베니어판에다 붙인 다음 말린다.
뜯어낸 고서의 한 장 한 장을 배접하고 나면 베니어 판에다 붙인 다음 말린다

 

 

다음은 책의 표지를 만들 차례이다 돋을무늬가 새겨진 능화판 위에 밀초를 칠하고

그 위에 표지에 사용될 두 겹으로 바른 종이를 올린다음 반들반들한 돌로 빠른 속도로 문지른다

마찰열에 의해 생기는 열로 인해 능화판에 미리 칠해둔 밀초가 녹아서 종이에 베어 들어가면서 은은한 무늬가 종이에 찍혀 나온다

보기에는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속도와 힘 조절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표지의 책 무늬를 찍어낼 때 사용되는 밀초의 경우

지리산에 양봉을 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부탁해 꿀 찌꺼기를 가지고 정제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이는 코팅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습기 침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베니어판에 붙여놓은 낱장의 책이 전부 마르고 나면 책의 원래 모양에 맞춰 자르고 난 뒤

표지를 붙이고 큰 바늘로 구멍을 다섯 개 뚫어 책을 꿰매면 복원은 끝이 난다 
 

 

 

 

복원될 책의 표지에 쓰일 한지에 무늬를 새기고 있는 중이다.
복원될 책의 표지에 쓰일 한지에 무늬를 새기고 있는 중이다

 

 

이 씨는 옛날부터 복원하던 이 같은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며 물을 뿌린 뒤

솔질을 할 때 글씨가 변형되면 안되고 자칫 잘못하면 종이가 찢어 질 수도 있어 힘조절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씨는 원본에 가장 가깝도록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래된 책일 수록 그 연대에 맞는 종이를 찾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전했다

책의 종이 재질만 만져봐도 좋은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이 씨는 책의 연대가 오래된 책일수록 중간에 표지 문양이 단순하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에서 책을 맬 때는 책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네 개를 뚫는다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이덕용 씨는 미술학도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일을 하면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아버님의 권유로 인사동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고 일을 배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작업이 너무 힘들어 처음 10년 동안은 다른 일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된 훈민정음’과 관련된 활자본 책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고 천직으로 삼기로 결심하게 됐다
 

 

 

 

 

연대가 오래된 책일수록 중간에 있는 문양이 단순하다고 한다

 

 

이제 장인의 소리를 들어도 충분하다는 의견에 이덕용 씨는 30년 넘게 이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옛날 종이와 현재의 종이가 달라서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진다며 아직도 배움의 과정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책을 복원한다는 것이 단순히 원본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책이 원래 만들어질 때 어떻게 만들어졌고

훼손되기 전에 모양은 어땠는지 상상해야 하고 그대로 만들 수 있어야 100% 복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혹여 지금의 기술로 똑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옛날 것과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더불어 책을 만지면 책의 기운이라는 것이 있는데 좋은 책을 보면 일단 냄새부터가 다르고 종이의 질감이 다르다

하지만 종이의 질이 좋고 나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보관하느냐는 것”이라며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귀한 책을 오래도록 보관하려면 책 자체를 소중히 다루려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책이 흔해

소중함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이 일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과 함께 잡지에 실린 책을 보며 기술 전수가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한 잡지에 실린 이 씨의 고서복원 작업 모습 이 씨는 자신이 이 일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던 모습이라며 기술 전수가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문화재 수리기능자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규장각 등 다수의 고서 복원에 참여한

이덕용 씨는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 데 엄청난 세월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기술적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해보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와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 배우기를 꺼려 하기 때문에 기술 전수가 쉽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요즘은 컴퓨터로 모든 작업이 이뤄지고 펜을 사용 종이를 이용한다고 해도 길어야 50년밖에 못가지만

한지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며 천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결국은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서 복원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데 비해 경제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작업이지만

우리나라의 혼이 담겨 있는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임한다는 철학을 덧붙였다.

 

 

정책기자 정해경(프리랜서) chnag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