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바흐의 비 / 최가림

하농17 2012. 7. 18. 10:32

 

 

 

 

비오는 날에는

아무래도 바흐의 미뉴엣이 제일이다

촘촘히 그려진 음표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나의 연주는 망친다

한평생 연습만 하다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난해하기만 한 생의 음표들

몸과 마음을 다 던져 연습한 곡조차

능숙하지 못한 손놀림

마음에서는 검은 구름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악보들은 점점 흘러내려

흔적도 없이 흐믈흐믈 사라져 버린다

비는 박자도 맞지 않는 리듬을 창문에 대고 두들겨 댄다

불협화음만 가득한 이 연주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바흐의 미뉴엣은 오늘도 미완성이다..

 

    시집<아를르의 별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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